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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Oct 01. 2019

그 어떤 날도 닮지 않은 날들


그런 날이 있다



그다지 별다른 이벤트나 약속도 없고

나를 재촉하거나 조급하게 만드는 의무나 책임감도 없는 날

해야 할 것이 쌓여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할 게 없는 건 아니고

다만 적당한 호흡과 적당한 두리번거림이 필요한 날



누군가를 만날 예정도 없으나

또한 혼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잠을 특별히 잘 자거나 설쳤던 것은 아니어서

참지 못할 답답함이나 찌뿌둥함이 날 그 어디로도 이끌지 않은 날



대단히 맛있는 걸 먹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입맛이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이것저것 손을 댔고

흘러나오는 티비 소리나 음악, 창 밖의 부스럭거림이 그다지 귀에 거슬리지 않는 날



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말리는 동안

언뜻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적당히 마음에 들거나 아무 생각이 없었으며

그날따라 별다른 뉴스가 있던 것도 아니어서

굳이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을 때야 비로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싶었던 날


누군가가 떠오르지도

특별히 외롭지도 않았지만

적당한 누군가와 무엇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지만 밤이 되도록 되도록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 어떤 필요도 없던 날



많은 날들 중 하루여서

며칠 뒤면 잘 기억나지 않을 날

그 어떤 날들 중 하루였으나

그 어떤 날도 닮지 않은 날



문득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 어떤 날이 떠올랐으나

이내 곧 나는 몸을 비틀어 바로 누웠고

그게 전부였던 그런 날.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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