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fter rea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yner Jul 23. 2020

호모 니토르(Homo nītor), 의존하는 인간

[안녕 주정뱅이 - 권여선]

빈 종이를 보면 설레던 때가 있었다. 깜빡이는 커서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서사의 두근거림을 재촉하는 듯했다. 한 때 나는 무엇에 취해 있었나. 무엇에 취하고 무엇에 두근거렸나. 어떤 시간을 기다리고 어떤 사람을 기다렸나. 어떤 말과 표정 행동을 그리워하거나 이미 몇 번이고 반복해서 곱씹었던 기억을 다시 또 꺼내 들었나. 나는 무엇에 중독되었나. 그리고 그것들은 왜 지금 내 곁에 없는가.


책을 읽는 내내, 이 작가는 분명 지독한 애주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충분히 취해있었을 거라 확신했다. 이 느낌은 마치, 위현이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마주친 그 강아지와 나눈 교감 같은 것이리라. 내가 술을 좋아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술을 좋아하게 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아마도 가장 만족스러운 취기를 즐기고 있을 때, 술이 주는 행복을 몰랐던 시간들에 대해 문득 궁금하게 여겼던 적이 있다. 어떻게 이걸 모르고 지냈지. 그런데도 난 이 느낌이 결코 낯설지 않았는데. 나는 분명 술을 즐기지 않았음에도, 적당한 음주가 주는 이 풍요로움 또는 충만함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술을 좋아하게 된 건, 다른 무언가에 잘 취하지 않게 된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삶은 의존의 대상을 옮겨가는 과정'이라는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동의하는 부분인데, 그것이 연인이든, 일이든, 취미든, 애완동물이든, 티비 예능 프로그램이든, 넷플릭스 미드가 됐든, 혹은 유흥이나 술, 음악이나 패션, 요리나 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떤 시기에, 어떤 대상을 흠모하고 정신적으로 혹은 심지어 육체적으로 까지 의존하며 그 순간순간들을 견뎌내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의 역사가 아닐까. 과학자들은 학문적 지적 호기심에 의존하고, 의료 봉사자들은 누군가에게 헌신함으로써 스스로의 이타심과 자기희생적인 행복감에 의존하고, 수많은 군사 지도자들은 주변 국가나 새로운 지역에의 쟁탈하는 성취감에 의존하고. 그렇게 모든 욕망에의 의존들이, 존귀하고 숭고스럽게 보이는, 우리 인간 역사의 생각보다 단순한 동기는 아니었을까.  


 문득 최근 본 미드에서 나오는 의존성 약물 중독자들을 떠올리며, 다만 그것은 의존성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의존하는 대상을 무엇으로 설정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존하는 방법과 과정이 쉽고 수동성이 강할수록, 타인에게 음의 영향을 주는 것일수록 낮은 평가를, 진입장벽이 높고 능동성이 강할수록, 또한 타인에게 양의 영향을 주는 것일수록 높은 평가를. 생각이 이쯤 다다랐을 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의존 취향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당신은 지금 뭐에 의존하고 있냐고. 뭐에 의존했었고, 앞으로 그밖에 의존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술 한잔 하면서 물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