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길 사람 속 - 박완서]
일상이 사라져 버렸다. 없어져야 그 소중함을 안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무엇이 사라졌는가를 찾아보는데, 막상 그것이 무엇인지 입 밖으로 꺼내기가 주저된다. 그래서 당장 할 수 없어진 것들, 그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산물들에 대해 주목하는 순서로 분실물의 정체를 더듬는다.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 이 시국이 정리가 되고 나서 하지 못했던 그 행동들과 그 만남들을 다시 하기만 한다면, 찝찝했지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모를, 그 사라진(것으로 믿었던) 소중한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생각이 이 즈음에 다다르면, 불현듯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가 정말 무언가를 잃어버리긴 한 걸까. 혹시 그렇지 않다면, 잃어버린 게 없다면 되찾을 것도 없지 않을까.
얼마 전부터 우리는 일상의 무너짐과 삶에서의 낮은 만족감에 대해 그 책임 소재를 돌릴 적당한 대상을 찾은듯 했다. 과연 우리는 진범(眞犯)을 찾는데 성공했을까. 그런 건 애초에 내 울타리 안에 없었던, 막연한 허상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걸 허위 분실 신고라고 하는 거야”, 조소 섞인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곧잘 자신의 불행과 불만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기보다는 적당한 타인, 그럴듯한 주변 환경에서 찾으려 한다. 독립적 주체로서의 나는 스스로가 행복할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거나 그에 걸맞는 모든 노력을 다 했는데, 이게 하필이면 ‘빌어먹을 그것’ 때문에 방해받고 있다는 둥의 논리. 때로는 직장 상사가, 때로는 둘도 없는 친구가, 애인이,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가족들이, 그것도 아니라면 쿵쾅거리는 저 윗집의 소음이, 파란 신호에 맞춰 제 때 출발하지 않는 앞의 차가, 갑자기 차선을 끼어든 개념 없는 배달 오토바이가, 친절하지 않은 마트 직원이, 특별히 관심도 없던 어떤 연예인의 부동산 시세차익 소식이 내 소중하고 가녀린 삶의 행복을 송두리째 공격하고 있어서, 나는 지금 내가 원하던 그런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것만 잘 충족되었다면 내 삶은 원하던 대로, 내가 준비했던 대로 그렇게 아름답게 흘러갈 수 있었을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늘 갖지 못한 무엇을 갈망한다. 발견하고 나면 곧 떨어지고 마는 네 잎 클로버의 가치처럼, 우리는 막상 기다리던 일상이 돌아오더라도 금방 그 가치를 잊고 말 것이다. 그리고는 또다시 내 불행의 탓을 대신 떠안아줄 ‘부재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면 우리는 또 무엇을 탓하고 있을까. 어쩌면 되찾아야 할 건 일상이 아니라, 정작 그 훨씬 전부터의 나 자신 스스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