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아래로
나를 끌어당긴다
한 번 더
나를 설득하려 애써보지만
쉽게 잘 안 되는 모양인지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건다
가지 않겠다고
내가 결코 가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버텨 보지만
그런 나를 흘깃 보지도 않고
다시 또 나를 끌어내린다
소매 끝이 시려
접은 소매를 내리고 보면
이번에는 가슴팍이 아리다
오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이여
나를 부족하다고
내가 부족하다고 하염없이 되뇌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이여
눈 앞이 흐려져
앞을 볼 수 없게 되고 나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싸워 왔나를 생각한다
먹먹해지는 목의 깊이만큼
눈이 감긴다
부자연스런 발걸음에 맞춰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신음을 내뱉는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게 된 나를 동정한다
오 내가 따르리라
그 모든 마음가짐 그때의 눈빛 그때의 기합
다시 나를 다독이려는데
슬쩍 다문 이가 시리다
그러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말을 건네는 그 목소리는
자꾸만
이렇게 나약해진 나를 아래로 끌어당긴다
나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