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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Apr 16. 2021

기억에게 안녕을 한다는 게

기억은 언제나 기억하는 자에게 종속되어 있다.



옳고 그름의 당위성이나 의지의 크고 작음은 온전히 기억하는 자의 마음이다.

그래서 기억은 힘이 없다.

한 때 기억은 기억하는 자를 이겨내다 못해 짓누르고 억압시키기도 했었지만

시간은 지났고

기억하는 자는 이제 제법 훈련이 되어있다.

기억 따위는 이제 통제 가능한 영역에 있다.



잊을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어떤 이별이 확정되고 나서

그 전까지의 수 많은 장면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잊혀져 가는 운명이 되고 만다


이별한 사람과의 사진

이별한 사람과의 대화

이별한 사람과의 눈빛

이별한 사람과의 웃음 눈물 또는 설렘 까지도



잊혀지는 운명에 놓인 기억들은 마지막 유언을 남겨야 한다

자신을 잊지 말라고

잊지 말아야 하는 존재로서의 기억은 한없이 안쓰럽다



자신이 그 어떤 기억들보다 값지다는 걸 증명하려 애쓰는 과정들 속에서

과장을 섞거나 의미 부여를 위한 시도를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

기억하는 자에게 더 이상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기억은 스스로 짐을 정리한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구나

이제는 잊혀질 시간이구나

더 이상 내 자리는 없구나


  


그렇게 뒤돌아 가는 기억의 모습은,

다름 아닌 내 모습이다



뒤돌아 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고

나이기 때문에

그래서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 갈 길이 달라졌다고

매정하게 안녕의 인사를 건네지만

그런다고 한들

내 모습에게 나는 안녕을 할 수가 없다



기억하는 자가 아무리 애써 자신의 것이 아닌 척해본다고 한들

소용이 없다

나는 결코 나에게 이별을 이야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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