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에 넘치는 순간들이 있다
1.
감성과 평가는 상대적이고 불완전하므로
무엇이 내 분에 맞는 수준인가를 가늠한다는 건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유리한 게임
다행히도 인류는 행복과 만족을
상대적으로 느끼는 방향으로 진화되어왔다
나는 그 부분이 인류의 생존율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여왔으리라 믿는다
절대평가가 주지 못하는
절대다수의 만족과 행복을
상대평가가 가능토록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심지어 매일 매 순간 행복감을 느낄 수도
또는 그 반대의 감정을 그 반대의 빈도만큼 느낄 수도 있게 되었다
의도된 설계라기 보단
자연선택설이 더 타당한 해석 이겠지만
결국엔 이러한 방식이 개체의 생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방증
2.
하여
나는 분에 넘치는 만족감을 느끼는 행운을 맞게 되었다
분에 넘치는 자유와
분에 넘치는 스릴과
분에 넘치는 감동과
분에 넘치는 풍요로움
물론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결핍들이나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나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욕망들이 많지만
이쯤에 이르면
오히려 이러한 부족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마저 없었다면,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필수 불가결한, '적당한 결핍' 역할을 해야 할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3.
분에 넘치는 만족에 사로잡힐 때면
나는 곧 불안해진다
이는 두 가지 측면인데,
하나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이 만족감의 지속과 그 후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 감정을
이 분에 넘치는 기분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혼자서만 누려야 한다는
일종의 고독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위스의 눈 덮인 그린델발트 전경을 사진기에 다 담지 못해
이리저리 허둥대던 그때보다,
홍보를 전담으로 할 관광청도 없고,
멀쩡한 사진 하나 조차 찍을 사진기 하나 없는
이 특수한 상황 속
이 특수한 나의 몸과 마음이
이 특수한 사건에 대하여 갖게 된
감정과 감상의 일련번호들을,
나 아닌, 이 지점을 포착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찾는 일이
훨씬 더 어렵거나
혹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아무도 모를 거야.
아니,
그를 설명하는 방법이나 스킬이 존재할지언정
내가 바로 지금
그 기분과 마음이란 걸,
당신에게
짧은 시간 내에 전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에
결국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대체할 용도로
이도 저도 뭣도 아닌
아무런 힘도 없는 한마디를 내뱉고 마는 것이다
이 기분을 당신도 알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