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이 필요한 사람들
주거 인테리어는 어렵다. 상업 공간과는 다르게 소유주가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다. 있다 보면 흠이 보이고 살다 보면 불편한 곳이 발견된다. 그런 흠과 불편함은 잔손보기의 대상이고 공간을 만든 회사의 평가 기준이 된다. 내 집이 아니라면 살다가 떠나면 그만이지만 어렵게 장만한 집이고 비싼 인테리어까지 하니 더욱 마음이 쓰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인테리어 회사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작업 전부터 신중하다. 소비자와 디자인, 견적을 꼼꼼하게 협의하고 계약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장이 시작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는 갈등으로 번진다. 작은 샘플로 선정한 자재가 막상 벽에 붙이니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도면을 볼 줄 모르는 소비자를 이해시키지 못하고 현장에 시공되었을 때, 구두로 협의하여 추가 입고된 가구가 비싸다고 느껴질 때가 그렇다. 계약 전에 아무리 소통을 잘 했다고 하더라도 현장이 진행되면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사진 : 도면을 보며 고민하는 공간 디자이너
갈등의 해결책은 예산과 시간이다. 소비자가 비용과 시간에 더 관대해 지거나, 인테리어 회사에서 문제를 떠안으면 해결된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바로 해결하면 탈이 없다. 어긋난 상황에서 시시비비를 가려 명확하게 정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우선 해결하고 결과를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회사와 다 끝나고 한 번에 정리하자는 소비자의 태도는 갈등을 부추긴다. 일의 진척보다 공사대금을 더 요청하는 인테리어 회사이거나 추가된 견적서를 건별로 제출했을 때 누가 돈을 안주냐며 기분 나쁘다고 말하는 소비자라면 공사가 완료되어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돈 때문이 아니라며 미루는 문제는 결국 돈 때문에 더 큰 문제를 낳는다.
불신의 씨앗은 더 작은 곳에서 발생한다. 집에 물이 샌다든지 조명에 불이 안 들어오거나 타일이 떨어진 상황이라면 명확하게 잘잘못이 가려지지만, 페인트로 마감된 벽에 이물질이 묻어 오돌토돌하거나 편히 몸을 쓰지 못하는 면에 실리콘이 깨끗하지 못한 경우 또는 벽 코너에서 맞닿는 도배지가 미세하게 문양이 틀어졌을 때가 그렇다. 내용을 봐서는 당연히 인테리어 회사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도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시공하지만, 문제는 더 좋아지지 않을 때가 있다. 털어서 먼지 하나 없는 사람이 없듯, 자세히 봐서 부족하지 않은 현장이 없다. 사연은 묻히고 보이는 것은 마감이기에, 이유를 들어봐야 알 수 있는 상황들이 현장에는 많이 발생한다.
우여곡절 끝에 마감이 되면 모든 갈등과 사연이 마감재에 덮어진다. 차갑고 먼지투성이였던 현장이 새로운 집의 모습으로 변모했을 때, 집주인의 표정은 달라진다. 먼지 속에서 업자로 보였던 현장 소장이 새집에서는 마법사처럼 보이며 그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소비자의 감동하는 표정, 고마운 마음은 현장 소장에게 전달되어 잔손 보기가 잘 이루어지고 새집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된다.
다른 경우도 있다. 마감을 하면 잔손 보기 리스트가 A4 한 장에 가득하다. 사연 따위는 묻어버린다. 관심도 없다. 소비자는 내 집에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지라는 생각을 한다. 잔손 보기는 끝나지 않는다. 손을 댈수록 나빠진 것이 괜찮다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고, 더 좋아진 것은 다시 하라고 요청할 때도 있다. 이때 잔금과 평판은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갈등은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말이 되어 날아와 가슴에 꽂힌다. 중재할 기준도 사람도 정책도 없다.
아파트를 전문적으로 하는 지인에게 물었다. 열에 하나는 이런 상황이 생긴다고 한다.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해달라는 것을 다 해주고 그것이 안 되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돈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사람은 돈 때문에 그런 것이니 잔금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했다. 한 번은 모욕감과 수치스러움으로 법적 조치를 했는데 1년 8개월이 지나도 해결이 안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발생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늦게 돈을 못 받느니 조금이라도 지금 받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이런 상황들을 소비자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주변에 ‘인테리어하는 사람은 양아치다’라는 말이 난무한다. 필자도 문을 열고 닫을 때 “이 느낌이 아니에요”라는 말로 결제를 못 받은 적이 있다. 현장에서 이 말을 함께 들은 목공은 ‘이 느낌’에 대해 논의하다가 두 손 들고 다시는 안 오겠다고 가버렸다. 목공이 가고 며칠이 지나서 현장 직원도 못 하겠다고 가버렸을 때 ‘나도 양아치가 되어 볼까’라고 고민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양아치는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인테리어 회사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일부는 디자인과 견적을 무료로 받는다. 받은 자료를 들고 더 싸게 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다닌다. 찾지 못하면 다시 디자인한 회사로 의뢰하지만, 대부분은 적당한 곳을 찾는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디자인된 작품이 그도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종이 한 장의 도면이지만 그 속에는 누군가의 시간과 땀이 배어있다. 그들은 모두 퇴근한 시간에 스탠드 조명을 켜고 도면 한 장을 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현장에서 한 달의 시간을 먼지와 함께 보낸다. 그들에게 왜 이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자신이 디자인한 집이 완성되었을 때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서라고 한다.
10여 년 전 인도 첸나이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먼저 있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떠났다. “다그치며 일하는 것보다 다독거리며 일하는 것이 결과가 좋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그곳을 떠나며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됐다. 사람의 마음은 가는 대로 온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공간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고 했다.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존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