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주인공을 만들어 주는 공간

적응해야 하는 삶속에서, 오롯이 내가 주인공이 되는 공간

17평 아파트가 있다. 세 식구가 살던 집에는 맏이만 남았다. 동생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온기가 사라졌다. 집에는 시간을 먹은 흔적들로 가득했다. 근심과 걱정, 외로움이 넘쳐났다. 공간에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배려심이 가득했고, 그런 모든 아픔들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식구와 함께 있을 때가 궁금해 물었다.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일을 소개해 준 이모가 말해주었다. 관계도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색이 원색을 만나면서 변해가듯 어떤 사람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그래서 오롯이 혼자 있는 공간에는 주인의 내면이 담긴다.


의뢰받고 철거를 했다. 지나친 배려를 버리고 근심과 걱정, 외로움을 깨고 부쉈다. 버리고 깨고 부셔도 상처는 깊게 박혀 있었다. 아픔이 깊게 물든 곳을 그라인더로 도려냈다. 상처가 박혀 있던 만큼 다시 패였다. 패어 있는 곳을 덮고 거친 면을 갈면서 보듬어 주었다.


이쯤이면 됐다 싶을 때, 동쪽 베란다 창호를 뜯어버렸다. 낡아서 외부 온도를 막아주지 못한 창호 유리에는 기포가 들어간 반투명 비닐이 붙어있었다. 그것은 동쪽 빛을 차단하고 탁 트인 전경을 가리고 있었다. 단열을 위한 것인지, 상처를 가렸던 것인지, 외부와 단절하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더 두드리고 깨고 덮고 갈았더니 이내 텅 비었다.


이제부터 공간이 치장을 한다. 새색시가 새로운 사람을 맞을 준비를 하듯, 공간이 주인을 맞이하려고 꾸며진다. 공간의 아름다움은 평양냉면의 그릇과 같다. 담소(淡素)하게 육수를 담고 면을 돋보이게 한다.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게 묵묵히 담고만 있다.


공간의 치장도 기능이 우선이고, 미적 감각을 표현하되 삶을 받아줄 수 있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적응해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주인에게 맞는, 주인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공간만이 새색시의 치장처럼, 평양냉면의 그릇 같이 주인을 꾸며주고 담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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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치형 입구 안에 있는 나의 공간이 희망이고 안식처가 된다.


공간의 치장은 그래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삶이 더해졌을 때 완성된다.


주인이 문을 열었다. 작은 방과 주방, 욕실이 있는 긴 복도 너머에 아치형 입구가 있다. 그곳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신의 빛과 사람이 만든 조명이 조화를 이룬다. 그 뒤로 11층에서 보이는 확 트인 도시가 보인다. 현관문을 열고 보이는 아치형 입구 안은 새로운 세상인 것 같다. 그곳은 희망이고 나의 세상이다.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간다. 어둠이 있는 곳을 모두 밝혔다. 조명의 빛을 받지 못하는 곳을 간접 조명으로 밝혀 어둠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 어둠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조명을 사용해 분위기를 만들어 마음을 조절할 수 있기를 바랐다.


복도 너머에 있는 나의 세상으로 가는 길이 즐겁다. 낡은 과거가 사라지고 불편함이 새것으로 바뀌었다. 공간의 시간이 현재로 돌아왔다. 주인에게 맞춰진, 주인만을 위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공간의 주인은 주인공이 된다.


주인공이 아치형 입구에 들어섰다. 빛이 그를 비춘다. 아치형 입구의 프레임 안쪽으로 빛이 흐르고 주인공의 실루엣이 보인다. 주인공은 신이 만든, 우리가 만든 스포트라인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오른다. 주인과 우리가 만든 공간에서 삶이 더해져 행복하길 기원한다.

사진 2.PNG

[사진] 현관 문 안쪽에 고객이 가장 좋아하는 컬러를 입혔고 커튼에 빛을 비추어 변화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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