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균,쇠』의 시작은 다이아몬드와 뉴기니 정치인 얄리의 대화로 시작된다.
“당신네 백인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우리 흑인에게는 우리만의 화물이 거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프롤로그에서 시작된 질문은 676페이지에서 답을 한다.
“각 대륙의 장기적인 역사에서 나타나는 큰 차이는 그 대륙에 정착한 사람들의 타고난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백인이 다른 민족보다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환경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뜻일까.
나는 태어나니, 한국이었다. 대한민국 충청북도 제천시 시민이었고, 우리 부모님의 아들이었다.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 안에서, 충청북도 안에서, 제천시 안에서, 우리 부모님의 경제적 환경 안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는 전혀 무관했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면서 어려운 환경이라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서울 사람들을 선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났다. 취직을 하려고 서울에 입성했다. 서울에서 지내면서 얼굴은 하얘지고 사투리가 줄어들고 월급이 고향 친구들보다 많아졌다. 친구들은 얼마 되지 않는 나의 급여와 사투리가 섞인 나의 서울말을 부러워하며, 피부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들이 나를 부러워할 때, 나는 고시원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총,균,쇠』를 읽으면서 백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시골의 때를 벗기지 못하고 있을 때, 서울 사람보다 백인이 더 우월한 듯 보였다. 백인들과 어울리면 고향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듯, 서울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바라볼 것 같았다. 나는 그때부터 꾸준히 영어를 배우기 위해 돈을 썼다.
나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을 선망했다. 그들의 역사적 과오와 오류들은 왠지 모를, 마치 그래야 할 것 같은 동경과 선망으로 가려졌다. 나는 여전히 우리 부모님의 경제적 상황과 대한민국 GDP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셋집을 마련해서 결혼을 했다.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나를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느라 아팠다. 그 아픔이 익숙해졌을 즈음, 괜찮아졌나 싶었을 때가 도리어 곪아 있었다. 적응과 익숙함으로 생기는 불안과 두려움은 날카롭게 아내를 향했다.
그것조차 익숙해져갔다. 위로가 없는 익숙함이 켜켜이 쌓이고 무게에 눌려 단단해진다. 극복을 가장한 익숙함의 깊은 곳에는 결핍이 박혀있었다. 그 상처를 둘러싼 단단한 표면이 강함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겉이 단단해져 깊게 박힌 결핍은 도려내기 더욱 힘들어진다.
나의 결핍은 말이 되어 아내에게 향한다. 망치로 날카로운 못을 아내의 마음에 박는다. 박힌 못들은 쌓이고 쌓여 쇳덩어리가 되어 내게 돌아온다. 한 번 박힌 못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신혼집에는 상처들이 가득했다.
아내와 작은 집을 마련했다. 처음 마련한 내 집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성경에서 신이 천지를 창조하듯 방과 거실, 주방과 욕실을 꾸몄다. 커튼과 조명으로 빛을 조절하여 신의 빛과 나의 빛을 조화롭게 하였다.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색감으로 마감재를 선정하고,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가구를 배치했다.
신이 만든 우주에서 건축가가 만든 집. 그 안에서 우리가 만든 공간이 탄생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위로받는 듯했다. 한겨울에 꽁꽁 얼었던 얼음이 봄의 햇살에 녹아 사라지듯이, 조금씩 천천히 표면의 단단함이 부드럽고 유연해졌다.
집을 나가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나를 맞춰 적응하고, 익숙해지려고 발버둥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위로를 받았다. 우리의 상처를 서로의 위로가 치료해 주고, 아물어 사랑이 되살아났다. 그 사랑은 아이가 되어 우리에게 왔다. 우리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가 함께하는, 우리가 만들고 우리만을 위한 공간에서 나는 더 이상 누구도 선망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든 공간에서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여행이 되었다. 이러한 시간들이 나의 환경이 되었고, 나를 변화시켰다.
그 변화는 내가 하는 일에도 영향을 주었다. 오랜 시간, 인테리어 일을 해왔다. 지금은 회사를 만들어 공간디자인을 하고 있다. 보기만 좋은 공간을 만들기보다는 삶이 더해졌을 때 완성되는 공간을 만든다. 신이 만들어 놓은 환경과 누군가가 목적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도시와 건물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그곳에서 있는 순간이 오롯이 내가 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