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는 베토벤

그와 함께 만든 공간에서 느껴지는 전율

예술가는 어떻게 영감을 얻었을까? 영화 ‘카핑 베토벤’에는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을 작곡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는 신의 음악을 만들려고 했지만 청각을 잃고 좌절한다. 성격은 점점 괴팍해지고 고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음악에 대한 영감을 얻고자 숲으로 간다. 나팔 모양의 보청기를 끼고 자연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영화는 ‘합창’이 초연되는 장면을 15분가량 보여준다. 연주가 끝났다.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은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갈채와 환희를 몸으로 받는다. 그의 음악은 스크린 너머에 있는 관객에게도 전율이 느껴진다.


베토벤은 숲에서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그는 자연의 소리가 신의 음성이라 생각하고 음악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는 자연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자연의 소리는 나팔 모양의 보청기를 타고 베토벤의 귀를 통해 내면으로 들어가 음표가 된다. 음표들이 모여 악보가 되고 악보가 악기를 타고 음악이 되어 우리의 귀를 통해 마음으로 전달된다. 음악이 마음에 닿았을 때 전율이 느껴진다.


고흐의 그림을 보자. ‘까마귀 나는 밀밭’이란 작품을 보고 프랑스 오베르에 가서, 작품 속 밀밭을 보노라면 ‘거기가 이곳이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에서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의 작품은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자신의 삶에 녹아 그림이 되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의 작품은 장소와 현상이 아닌 그가 내면으로 바라본 세상이다. 그림, 그 안쪽 깊은 곳이 보였을 때, 전율이 느껴진다.


공간디자이너도 영감이 필요하다. 언제나 시간이 부족한 그들은 인테리어 잡지와 핀터레스트와 같은 이미지 웹사이트를 자주 본다. 필자가 인테리어 회사를 다닐 때, 일을 잘하는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녀는 모니터를 보며 시간을 많이 보냈다. 출근하면서 보아도 퇴근하면서 보아도 그녀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비법이 궁금했다. 퇴근하며 그녀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새로운 현장에 적용할 이미지를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출근하니, 그녀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잘 되어 가냐고 물었다.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선택에 기준이 낮과 밤에 따라 다르지 않냐고 물으니 귀찮은 듯 “엥! 그렇죠 뭐”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눈 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져 있었다.


디자인이 마치 옷 입히기 게임 같았다. 캐릭터에게 정해진 옷을 입혀보며 어울리는 것을 찾는다. 모델에게 입혀본 옷이 마음에 들면 제안서에 포함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찾을 때까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밤에 골랐던 옷을 낮에 보았을 때, 밤에 느꼈던 감정과 달라 다시 낮에 고른다. 일은 꼬이고 감정이 뒤엉킨 선택들은 그냥 그렇죠다. 그녀는 얼마 후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녀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매년 연말이면 예술의 전당에서 베토벤의 합창을 들었다. 고흐의 작품을 찾아다니며 감상했다.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고흐의 작품을 보며 그들의 영감과 우리의 영감을 생각했다. 그들의 작품을 보고 들으며 느꼈던 감정을 우리가 만든 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길 바랐다. 때론 작품들에서 영감을 얻어 공간에 적용해 보았지만 하면 할수록 고객의 불만은 커져갔고 내면의 불신은 더해갔다.


시련 속에서도 숲으로 갔던 베토벤처럼, 주말이면 가족과 예술의 전당에 갔다. 회사에 일이 없을 때에는 직원들과 미술관에 갔다. 작품을 보고 괜찮은 커피전문점을 찾아가 토론하고 공간을 경험했다. 계곡이 있는 숲에 가보기도 했다. 물에 발을 담그고 맥주를 마시며 숲에서 영감을 얻은 베토벤을 이야기했다. 화가라면 음악가라면 조각가라면 선물을 들고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경험에서 길을 찾아 헤맸다.


2023년, 예술에 조예가 깊은 고객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회사 사옥을 디자인하고 공사했다. 옥상의 정원과 그 아래 있는 사무실들, 지하에 갤러리까지 공사를 마쳤다. 그는 말로 영감을 주었고 우리는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의 말과 공간을 경험하며 디자인했다. 그의 말이 우리의 경험을 통해 디자인되어 공간이 되었다. 고객의 생각과 디자이너의 구상이 중간에서 만나니 전혀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그는 미술관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의뢰했고 특별함을 요청했다. 영감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류시화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읽었다. 그 중 “흰색의 도화지만이 모든 색깔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치와 같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디자인을 완성했다. 그 제안은 바로 채택되어 공사까지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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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진] 시집에서 영감을 받고 완성한 공간


작품명은 ‘백지’다. 갤러리로 가는 통로인, 계단을 지나며 백지처럼 비워지길 바랐다. 작품을 만나기 전, 살아왔던 원칙과 고정관념을 모두 비워 버리고 백지가 되어 들어가라는 의미를 담았다. 벽과 천장을 백색으로 마감하여 조명 빛을 통해 비움과 백지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전면 벽에는 대형 작품을 연상시키려 돌출 벽을 만들고 그 위에 카펫을 붙였다. 카펫의 털은 자유자재로 눌려져 결이 생긴다. 미술관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보이는 결이 다르다. 결은 이쪽저쪽으로 다양하게 눌리고 기울여 있지만 전체를 보면 조화를 이룬다. 완성된 계단에서 고객은 공간에 회사명을 붙이자고 했다. 마치 그림에 작품명과 작가의 이름이 붙여진 것처럼.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의 내면과 삶을 표현하지만 공간을 만들 때에는 사용자의 삶과 내면을 바라보아야 한다. 공간은 몇 발치 떨어져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지고 느끼며 생활하는,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공간을 기획한다는 것은 생긴 모양대로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옷과 같이 어울리고 사용자의 내면, 삶이 표현되어야 한다. 예술의 작품처럼 작품이 우선이 아닌 사람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형게임처럼 캐릭터에 어울리는 것이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맞춰져야 한다.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생활을 만들고,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귀가 멀어 자신의 연주조차 들을 수 없던 베토벤. 그는 피아노에 귀를 대고 진동으로 자신의 연주를 느꼈다. 그가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듯 공간디자이너는 공간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디자인될 공간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예술을 접하면서 작가의 내면을 읽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쌓은 내면으로 공간을 만들었을 때, 고객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낄 것이다. 더 많은 공간디자이너들이 모니터를 벗어나 경험을 통한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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