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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Oct 01. 2019

<엘리자베스타운>

실패가 두려울 때 다시 꺼내봐야 할 영화

난 당신이 실제로 일어난 깊고 아름다운 슬픔으로 빠져봤으면 좋겠어요.
출처: 영화 <엘리자베스타운>

영화는 리콜된 신발들이 다시 공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리콜된 신발과 드류처럼 무언가를 해보려다가 다시 되돌아오고 마는 시점이 있다. 실패보다 더 심한 참패라며 좌절했다.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참 아이러니하다. 자살 직전, 드류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리고 장례 준비를 위해 엘리자베스타운까지의 먼 여정 끝에 바라본 아버지의 얼굴은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고 하기엔, 천진난만하다. 드류는 인생일대의 참패를 경험했는데 동네 친척들은 집안의 자랑이라고 떠들썩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던 전화는 늘 한 번에 여기저기서 걸려온다. 우연히 묵게 된 호텔은 세상 떠나갈 정도로 시끌벅적한 웨딩 파티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술김에 한 포옹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만난 그 여자도.


클레어의 친절한 길 안내 덕분에 무사히 엘리자베스 타운에 도착한 드류는 적적한 맘을 달래고 싶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비행기 내에서 잠깐 만났던 것뿐인데 그들의 통화는 끊어질 줄 모른다. 서로에 대한 엄청난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다기보다는 각자 할 말을 떠들어대는 것 뿐임에도 이상하게도 그것 그대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했던 위로를 받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내 맘을 이해해주길 바라기엔 우리는 애초부터 다 다른 사람이라는 걸 지난 날을 통해 알고 있다. 그리하여 언젠부턴가 우리는 나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을 기다리며 살아온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아도 될 잔잔한 일상들을 보고 있자면, 이내 맘이 괜스레 편안해진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일상에서도 일치감치 마주하게 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 마음을 뒤흔드는 순간들은 분명 존재한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그 천진난만함의 시선을 좀 더 넓혀보자. 우리가 흔히 실패라 혹은 참패라 규정짓는 일들 역시 오늘 하루 있었던 조금 이상한 사건이라 넘겨보는 건 어떨까.


많은 이들이 인생에 있어서 성공을 원한다. 하지만 성공을 향해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다. 이왕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 거 좀 더 뒤로 가보자. 우리의 가족, 나의 고향, 내가 시작한 바로 그곳으로 나아가다 보면 나를 무척이나 두려웁게 만들던 그 성공이 생각보다 작고 사소해 보일지 모른다.


평점: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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