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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Nov 23. 2019

<시빌>

이런 기분, 내가 참 잘 아는 영화

시빌!
출처: 영화 <시빌>

시빌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자가 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영화 속에서 정작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한다. 영화 초반부, 한 남자가 시빌에게 한 말처럼 작가란 과연, 정적이고 현실에서 주체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며 소위 계획과 일만 벌이는 사람일까.

순간의 열정에 심취해 현실을 보지 못하는 작가와

인생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우리가 무엇이 다를까.


끊어지는 듯이 넘어가는 장면 장면들이 거슬렸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이란 것도 그렇지 않나. 오늘을 살면서도 자꾸만 잊고 싶었던, 그러나 잊지 못했던 어제의 기억이 겹쳐온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도 모를 만큼 생생하게, 어이없는 순간에도 불현듯이.


시빌은 온전히 자신의 글을 다시 써보고 싶어서 하던 일도 다 정리하고 왔다. 왜 그랬을까. 매 순간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과거 그녀를 옆에서 도와줬고, 그녀가 사랑했던 그 남자. 안 좋게 헤어졌다면 잊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그때의 좋은 날이든, 안 좋은 기억이든 뒤죽박죽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아마 돌아서서 봤을 때 그 남자를 잡지 않은 걸 후회하기 때문일 테다. 시빌은 순식간에 타오르는 사랑처럼 다시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패기 있게 모든 걸 때려치우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 하는 그녀에게 현 남친이 하는 말, 그녀가 진료하던 사람들은 다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물론 죄책감은 들지만 시빌은 그녀가 선택한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 뒤에도 글이 안 써져 막막했던 그녀를 붙잡는 건 여럿이다.

자살로 목숨을 끊었던 엄마의 기억,

유명 배우인 애인의 아이를 임신한 막 떠오르는 신인 마고,

그 유명 배우 이고르,

그리고 그들이 출연하는 영화의 감독, 미카엘라.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상담을 받는 한 아이.


영화 중간중간에 그 아이와 상담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같이 보드게임 같은 걸 하면서 소년의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는 시빌. 저 모든 사람들 때문에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을 때 즈음 그 아이가 혼자서 할머니 집 세탁실에서 듣곤 하던 음악이 소년의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 하나의 단서로 모든 흩트려진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듯하다. 마고는 헤어진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이고르는 그 남자와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미카엘라 감독은 자신의 못다 한 작가로서의 삶을 생각게 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실은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엄마의 죽음을 맘 속에 맺힌 듯 안고 살았던 자기 자신을 보여준다. 


시빌은 작가라는 일 대신 떠났던 그 남자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다지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것도 못다 한 그녀의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짓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기억의 파편과 연결된 그 하나하나를 놓치기 싫어서 안간힘을 쓰고 버티는 중이다. 마고, 이고르, 미카엘라. 그들의 말이 하나같이 다 이해가 가고 마음이 간다. 그 기억들이 이리저리 그녀를 매달려서 아프게 한다. 그렇게 휘둘리다 보면 초라한 나 자신만 남는다. 그 사람들을 놓치고 나면, 내가 아파했던 그 기억들처럼 남게 될까 봐 멍청하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정작 그 사람들은 시빌에게 뭐든 대신해달라고 이상한 부탁들을 한다. 내가 이야기하기 싫은 상대에게 대신 말해달라고 하고, 대신 촬영 현장에서 일을 해달라고도 한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시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자기들이 매달린 게 아니라 그녀가 매달린 것 마냥, 너무 쿨하다. 나만 힘든 것처럼. 


그런 시빌은 영화 시사회 자리에서 술에 진탕 취했다. 이제는 정말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에 서고 싶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며 관중을 지배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가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끼어들면서 시빌의 목소리는 묻히고, 마고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서 초라하게 끌려 내려온다. 


영화가 결말을 향해 다다를 때, 그녀는 다시 모든 걸 다 잊고 모든 사람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려 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나를 보면 헤어졌던 아빠를 생각나게 하냐고, 그래서 나를 싫어하냐고 묻는 아들의 말. 그리고 막을 내리는 영화.


잊을만하면 그 아픈 기억들은 다시 생생하게 살아 돌아온다. 수 없이 다짐해도 소용없다. 언제나 이 게임에서 지는 건 나다. 


전지적 작가 시점. 

작가라면 뭐든 전지전능할 줄 알았지. 글을 쓴다는 게 이리 온몸과 맘을 뒤흔드는 일이란 걸 어찌 알았을까. 

내 인생은 내가 주인일 줄 알았지. 평생을 당신의 말과 당신과의 기억 때문에 헤매일 줄 어찌 알았을까.


평점: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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