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기차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 이 순수한 아이들이 있다. 부모님이 이혼해서 6개월 전부터 떨어져서 살았던 코이치와 류 형제는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을 지나 함께 그 기적을 보고 가족이 다시 함께 살 수 있도록 소원을 빌고 오자는 귀여운 작전을 모의한다. 이 두 형제 말고도 아빠가 파칭코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이, 죽은 강아지가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아이, 달리기를 잘하고픈 아이, 공부는 못해도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아이들이 함께 기적을 찾아 힘찬 여정을 떠난다.
사실 나는 어른의 시선으로 이 아이들을 바라보다 보니 혹여 힘들게 먼 길을 찾아온 아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들의 순수한 동심이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가고시마에 다시 돌아온 3명의 친구들이 ‘혹시?’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열어봤을 때 강아지가 깨어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알고도 묵묵히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내 걱정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기적은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란 걸 이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이니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우리는 어린 시절 숱하게 고민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몇 번을 고쳐가며 내 미래를 상상하고 꿈꿔왔다. 그러니까 이 아이들이 바랐던 기적이란 건 각자가 꿈꾸는 바람이자 그 나름대로의 세계다. 애초에 기적이 이루어질지 말지는 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무엇을 꿈꾸는지 정하는 것. 그리고 두 기차가 스쳐 지나갈 때 나의 꿈을 목청껏 소리치고 세상에 선언하는 것.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행위인 셈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담임선생님은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적어오라고 하신다. 어른이 되기에는 한참 어린 나이지만 이제는 내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하기 시작한다.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무작정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나의 미래를 스스로 꿈꿔보기 시작하는 나이. 비록 아직 어려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도 스스로 무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던 이 아이들에게, 이 시기에 주어진 고민의 순간들은 그 자체로 너무나 소중하다. 꿈꾸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일 테니.
한편으론, 이 여행에서 7명의 아이들은 이미 기적을 이룬 것 같기도 하다. 엄마, 아빠 때문에 6개월 동안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있던 두 형제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친구들과 돈을 모으고 기차역에서 재회한다. 부모의 선택에 따라 그대로 흘러가는 것들을 거슬러서 일을 벌이는 것 역시 일종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자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기차 역장 아저씨가 들려준 화산 폭발 피해에 대한 생각, 지나가다가 만난 예쁜 코스모스, 사기당할까 봐 걱정될 만큼 마음씨 좋은 노부부의 따뜻한 온정과 예상치 못한 위로 그리고 곱씹어보니 은은하게 단 맛이 나는 할아버지의 떡을 동생과 나눠 먹는 그 순간. 각자의 선로를 달리던 두 기차가 서로 스치는 순간이 기적이라 불릴 수 있는 것처럼 만나지 못했을 뻔한 소중한 시간들이 우리의 추억이 되는 것 역시 쉽게 찾기 힘든 행복이다. 늘 이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 어른이 되어 깨닫게 되지만.
화산재가 매일 바람에 날리는 데도 이사를 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코이치는 이 여정의 끝에서 한 걸음 성장한다. 나의 꿈만큼이나 이 세계 역시 무겁고, 내 사람들과 그들의 꿈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때론 내 이기적인 바람도 져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운다. 아쉬운데도 그런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이 그렇게 기우는 것이다. 사실 화산이 폭발할 사건과 코이치가 ‘화산이 폭발해 우리 가족이 다시 모여 같이 사는 꿈’은 별개로 작용한다. 그러나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이 상황을 바라보자면, 코이치가 (자신이 바라던) 기적이 아니라 세계를 선택함으로써 어쩌면 이 아이로 인해 화산이 폭발할 수 있었던 재앙이 생겨나지 않음으로 하여 이 세계가 구원이 되는 셈이기도 하다. 이 아이가 자신의 꿈을 져버림으로써 가고시마는 지금처럼 조용하고 평온한 하루하루를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어떤 소원을 바랄지와 같은 작고 사소한 일이 세계의 구원처럼 거대하고 위대한 일로 확장되는 마법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선사한다.
무엇이 그리도 바빴는지 이유 없이 뛰어다니고, 잠시라도 멈춰 서면 다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거렸던 어린 시절의 우리. 어른이 된다는 건, 이 세상에 산타 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념하듯 모든 기적을 져버리는 게 아니다.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세상의 속도에 발맞춰 걷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