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 컬러, 스포츠 카. 이름을 대신하는 번호와 슬로우 모션, 액션 중간마다 놓치지 않는 만담,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와 에미넴 노래 가사처럼 멋들어진 것들만을 족족 따라 한다는 걸 이 영화도 잘 알고 있다. 뻔한 게 지겹다. 하지만 그 뻔한 무언가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그게 뻔한 것인 줄 모르고, 그 자체가 원래 멋인 줄도 모른다. 사람에게 주어진 삶 역시 누군가에겐 지겹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 생을 살아갈 자격으로서의 ‘이름’ 역시 어느 순간에는 버릴 수 있었다. 이 영화 속 인물들처럼. 본디 이름을 버리면 아무런 존재(no one)도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one이라는 번호를 붙이게 되면서 사람은 또다시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 중요한 건 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의미 없는 수가 지칭하는 one, 사람에 있다. 사람의 존재라는 건 쉬이 버려지지 않고, 포기가 되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에 단 몇 분 미친 듯이 운전만 하다가 어이없이 죽은 멤버 6의 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한 나라를 멀리서 바라볼 때 그 안의 국민 개개인은 이름 하나 제대로 알 수 없는 의미 없는 1,2,3.. 무수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존재들이 단지 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저 높은 꼭대기 위에 있는 한 사람이 아니라, 몇천만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보라.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순간 그 힘을 실감한다.
한편으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사망자 수. 그리고 방 안에 틀어박혀서 사람을 죽이고 죽였던 26만 명의 수, 혹은 그 이상.
이들에게 붙여진 수를 보면서 그게 단지 수치의 정보 그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걸 체감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무심한 숫자 한 줄 뿐이지만 그게 사람을 순식간에 불안과 환멸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수 안의 존재감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도 하고, 우리를 무너뜨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