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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Mar 20. 2020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연 우리 삶에 끝이란 게 있는지 자문하게 하는 영화

영영 안 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다예요.
출처: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가 사직하면 우리는 판사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엔 미리암과 앙투안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미리암과 앙투안의 각기 다른 주장들, 아들인 줄리앙의 증언, 그리고 과거 딸 조세핀의 진료기록 밖에 없다. 정말로 앙투안이 가족에게 폭력을 가했는지,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명확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심리는 끝나고 만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들이 다투고 있는 양육권의 대상인 줄리앙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판결에 따라 줄리앙은 격주마다 아버지와 아버지와 함께 지내야 한다. 하지만 차에 탈 때마다 뾰로통한 표정에서 보이듯 줄리앙은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 부를 만큼 아버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초반부까지만 해도 줄리앙이 아빠와 함께 있는 차 내부를 연신 보여준다. 명확한 진실은 모르지만 조세핀의 손을 부러뜨렸을 만큼 무섭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좁은 공간에서 단둘이 있어야 함은 그 정적인 분위기 속의 숨 막히는 긴장감을 맴돌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보이는 정황만을 가지고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엔 아직 이르다. 미리암은 남편을 직접 마주하는 게 두렵고 무섭다. 정상적인 부부라면, 동등한 위치에 있는 아내와 남편은 양육권의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11살의 어린 줄리앙은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 엄마가 집에 없다고, 엄마는 휴대폰이 없다고 불안한 거짓말들을 내뱉는다. 그리고 애인이 생긴 것인 지 집착하는 앙투안은 끊임없이 줄리앙을 재촉하며 이사한 집까지 알아내려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이란 관계에서 일어나는 무자비한 폭력과 그로 인한 고통은 당사자에서 그치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함께 이성을 잃어버린 공격성, 반대로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숨으려고만 하는 도피.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건 이를 모두 지켜보는 아이들이다. 아버지가 핸들을 거칠게 휘어잡으며 운전하는 차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듯, 어른들 사이에서 좌지우지 되어버리는 아이의 위치가 가엾게 느껴진다.


후반부 한밤중에 미친 듯이 집 문을 두들기던 앙투안이 화를 참지 못하고 문에 총을 쏘아대기 시작할 때는 흔히들 말하듯 영화 <샤이닝>을 방불케 하는 공포였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실체를 두 눈으로 목도하면서, 좁은 욕조에 숨어서 그 공포가 끝나기만을 바라는 고통을 함께 느낀다. 

이제 다 끝났어.
출처: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연 다 끝난 것일까. 가족이란 건, 그리고 그에 대한 기억은 쉽게 지워지는 게 아니다. 앙투안은 별거를 하는 동안 자신의 부모님 집에서 잠시 머무르고 있다. 어느 날, 그가 식사 자리에서 줄리앙의 거짓말로 인해 집착하고 폭발하여 집을 나가버린 후에 아버지는 그런 앙투안의 모습에 되레 화가 나서 이런 말을 한다. '이 집에선 내가 왕이니 들어오지 마!' 확신할 순 없지만 이 짧은 대사에서 앙투안이 과거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떠했을지 짐작케 한다. 그런 앙투안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호의적인 반면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을 일삼는다. 줄리앙은 이제 앙투안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진실을 추궁하는 아버지 때문에 수 없이 맞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고, 나중에는 불안함에 폰에서 엄마의 번호를 아예 지워버리는 치밀함까지 자발적으로 배운다. 조세핀 또한 이러한 가정사로 인하여 과거에 대한 아픔이 있다. 파티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도, 아버지의 등장으로 뒤편에서 난리가 난 가족들을 지켜보며 그녀의 눈빛 속에서 불안함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또, 미리암은 자신이 겪은 일을 딸이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세핀의 남자 문제에 더욱 신경 쓰는 편이다. 남자 친구를 만나려고 학교와 학원 수업을 빠져 먹는 딸을 걱정하며 잔소리를 하듯이 말이다. 그런 조세핀은 임신까지 했다. 이젠 더 이상 누군가의 딸이 아닌, 엄마가 되어야 할 그녀가 과연 자신을 둘러싼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영화는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음'으로 하여금 끊임없는 불안감을 야기한다.

시작할 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채 들리는 구두 소리와

파티장에서 큰 음악 소리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습과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명확한 과거와 진실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더 무섭다.

영화가 끝내 보여주지 않은 이 가족의 이야기가. 

출처: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작할 때 우리는 각자가 판사가 되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를 공명정대하게 판단하고자 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리는 앞 집 할머니가 되어 그 잔인한 진실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야 말았다. 다행히 상황은 진압되었지만 총알이 관통해버려 문에 나버린 구멍들처럼 이제 그 날의 아픈 기억은 온전치 못하게 우리의 삶을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할머니가 문을 닫아버리면서 끝나버린 그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끝난 게 아니다. 줄리앙이 아버지에게서 멀어지려고 도망치다가도 이내 다시 돌아오고 마는 것처럼. 돌고 도는 강물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평점: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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