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런 영화

<팬텀 스레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진정한 사랑이 있음을 보여준 영화

by FREESIA
레이놀즈는 제 꿈을 이뤄줬어요. 그래서 전 레이놀즈가 가장 원하는 것을 줬어요. 저의 전부를요.
출처: 영화 <팬텀 스레드>

영화를 보는 내내 아름다운 색감과 영상미, 지루하지 않은 연출 방식 그리고 빈틈없이 이야기 곳곳을 채우고 있는 우아한 사운드 트랙까지. 영화의 내용을 떠나 영화의 분위기 전체가 주는 그 우아한 분위기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을 녹아내리게 한다. 특히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해서 인지 조금은 낡은 듯한 느낌의 영상도 맘에 든다. 하지만 레이놀즈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드레스가 그저 실력 있는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가 꿰어내는 한 땀의 실에도 사연이 있듯이 구조적으로도 그저 아름다운 영화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사랑과 고통이 존재한다.


팬텀 스레드란, 보이지 않는 실이란 의미로 빅토리아 시대 여공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집에 돌아와서도 눈앞에 실이 보이듯 착각하여 그 일을 반복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이영화의 제목이듯, 보이지 않는 실은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레이놀즈의 현재를 옭아매고, 한편으로는 의상 디자이너로서의 명망을 잃지 않기 위해 깐깐하게 주위 사람들과 자신을 통제하며 수많은 드레스를 만들어내는 레이놀즈 본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혹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알마와의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겠다.


For a hungry boy, my name is Alma.
출처: 영화 <팬텀 스레드>

우선,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고, 다른 모든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남녀의 첫 만남을 초반부 레이놀즈가 알마가 일하는 식당에서 그녀에게 음식을 주문하는 장면으로 꼽고 싶다. 천천히 주문할 음식들을 말하고 그것을 받아 적는 알마. 그런 알마가 적은 주문서를, 그녀의 글씨를 자신이 가져도 되냐고 묻는 레이놀즈. 관심과 사랑의 시작이 이 짧은 장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첫 만남에서도 중요한 건 주문 도중 손님인 레이놀즈가 알마 대신 "Anything else"라는 말을 먼저 건넨다는 것. 그리고 알마가 후에 그에게 준 쪽지의 메시지에서 그를 'boy'라 칭하는 것. 여기서 그 둘의 관계가 복선이 되는 듯하다. 알마와 비슷한 관계로 시작했던 수많은 여인들은 레이놀즈의 위상을 우러러보며 그에게 강자의 자리를 스스로 내어주었지만 알마와의 사랑에 있어서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강자와 약자처럼 '관계'에서 서로의 위치는 마냥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상대에게 져주기도 하고, 배려를 하기도 하며 힘들 때는 사랑하는 이에게 잠시 기대어도 된다. 그렇게 사랑이란, 각자의 위치가 수없이 많은 변화를 수반하는 것 같다.


Never cursed
출처: 영화 <팬텀 스레드>

아마 어릴 적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한 이별을 경험하면서 수없이 본인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기억과 비롯하여 그의 모든 생활, 일과 관련한 영감에 있어서 '변함없는'가치만을 추구했다. 하지만 그가 알마에게 청혼할 때 말한 것처럼 변화가 없는 곳은 죽은 곳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를 떠나갔다. 어머니도 삶의 변화를 택했고 그의 의상실 고객도 유행을 따른다며 변화를 향해 갔다. 그는 그렇게 죽은 집에서 홀로 살면서, 한없이 엄마에게 말을 걸며 가끔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꺼내곤 한다.


그러나 알마를 만나면서 그는 변하기로 했다. 그에겐 무척 힘들지만 그녀의 습관들을 이해하고자 했고, 파티장으로 홀로 떠난 알마가 걱정되어 그녀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조금은 극단적인 장면이라 오싹하기도 했지만 알마가 독버섯 요리를 차린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먹는 모습. 보이지 않는 실이 그를 옭아매고 그 저주에서 빠져나오길 간절히 바랐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을 먹으며 자신의 몸이 고통스러워져서야 생의 의미를 깨닫는다.


변하지 않는 것이 주는 고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평점: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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