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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Dec 25. 2020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온통 흑백으로 뒤덮인 세상에서도 빛은 알아볼 수 있었던 영화

출처: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찰리 채플린이 된 모금산은 강냉이 사제 폭탄을 삼켜버린다. 그리고 그 폭탄을 빼내려 온갖 우스꽝스러운 시도들을 펼치지만 이내 실패하고 만다. 작전을 바꿔 스위치를 눌러 폭발시키려 한다. 이 또한 쉽지 않다. 말은 없지만 정도, 사랑도 많은 사람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모자를 벗어 매너 있게 인사할 뿐 매번 버튼 누르기를 실패한다. 밤이 되어 홀로가 되어서야 그는 한 공터에서 스위치를 누른다. 그러나 예상밖에도, 불발한다.


위암 판정을 받은 한 남자가 영화감독인 아들과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영화를 찍게 된다. 모금산이 영화를 찍는다는 건, 자신의 오랜 꿈이자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이들이 영화를 한 편 만드는 과정을 통해 조금은 어색한 부자가 오해의 감정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나간 것들을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모금산은 옛날 영화를 닮았다. 영화는 우리가 입 밖으로 용기 내 말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게 해 준다. 특히 모금산의 영화는 무성영화였다. 그의 영화 속에서는 대사 하나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주인공의 연기와 연출을 통해 인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모금산은 아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영화 한 편 찍자’는 말을 한다. 그가 내뱉은 말은 진짜 영화를 한 편 찍자는 말 한마디였지만 그의 남은 인생을 정리하는 단 하나뿐인 회고록이기도 했다. 못다 한 꿈을 이루고 아들에게 친어머니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 그것이 모금산의 진짜 시나리오였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아 두는 게 영화다. 모금산의 행동들 역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아내가 죽은 이후로 방 문 앞에 한 번도 넘어간 적이 없는 달력이 보여주듯 그는 오랜 시간 과거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멈춰있는 삶은 미련하고 슬픈 걸까. 아니, 로맨틱하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초반부에 스데반은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호기심에 재미 삼아 따라 한다. 그러나 이후에 차를 타고 입원한 아버지를 뵈러 간 스데반은 담배를 한대 피우는데, 그 모습은 따라 하려 하지 않아도 이미 라이언 고슬링 같았다. 영화 속 인물을 따라 하는 것처럼, 지나간 것들을 반복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일종의 이해이자 타인이 되어 공감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가 이야기하는 방식이 참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속 세상은 온통 흑백으로 뒤덮여있다. 생생한 색감들은 영영 사라져 버렸으니 하루는 고요히 반복되고 감정은 생기를 잃은 듯하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도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빛. 색을 잃어버린 세상에서도 빛은 단숨에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그 자체로 뜨겁다는 걸, 눈부시다는 걸 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은 코미디 영화의 시초라 불린다.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을 했다. 절망적인 순간 속에서도 그가 만들어낸 좌충우돌 소동들은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할 만큼 밝고 명랑하다. 모금산은 자신이 삼켜버린 시한폭탄을 터뜨리고자 스위치를 누르지만 불발하고 만다. 모금산의 코미디 영화를 담아내고 있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라는 또 하나의 코미디 영화는 폭발하는 폭탄의 빛이 아니라 저 멀리서 폭죽이 터지는 광경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고전적인 말을 믿음 삼아 영화는 영화만의 방식으로 모금산의 인생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덧. 모금산의 일기를 읽는 장면 중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모금산은 자신에게 외로운 사람인 것 같다고 했던 자영을 언급하며 그녀가 외로운 사람인 것 같다고 한다. 외로운 사람은 타인의 외로움을 알아본다.


평점: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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