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현실만 바라보며 살아가던 마틴 에덴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당신이라면 내가 누군지 깨닫고만 싶어 지는 그 욕망, 그 불꽃을 손 아래 두고서도 사랑의 시를 읊는 순간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견딜 수 있던 그 대담한 청년.
그러나 자유주의라는 이름의 혹은 사회주의라는 이름 속에 그 허망하고 텅 빈 것의 정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또 그것들을 구분 짓고 있는 계급의 변명들을 바라보며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듯 자신을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가며 그의 세계를 획득한 그는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사랑을 상실하고 작가로의 삶에 영향을 끼쳤던 루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그는 방황한다. 비록 유명한 작가로 잘 나가지만 그의 안에는 이제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다. 남은 불꽃이 없다. 그가 세상에 던지는 글들, 그의 목소리는 수없이 반송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곤 했었다. 아무리 자신의 방법으로 세상에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내던져도 벽에 가로막힌 듯. 하지만 그가 유명해지자 이제 그 유명한 이름의 마틴 에덴의 예전 작품들에도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가 허황된 사상들에 대해 비판한 것처럼 사람들은 이제 텅 빈 이름만 무성한 마틴 에덴의 이름을 좇는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려 한다. 이제 서야. 뒤늦은 응답이다. 이름만 존재할 뿐 그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사회주의자 마틴 에덴, 자유주의자 마틴 에덴, 한 사람을 사랑해 작가의 꿈을 꿨던 마틴 에덴, 현실을 놓지 못한 마틴 에덴, 이젠 전 세계로 인정받는 작가 마틴 에덴. ‘나’라는 사람은 타인과의 만남으로 인해 수 없이 만져지고 고쳐졌다. 그들이 만든, 그들이 기대하는 마틴 에덴이 존재할 뿐, 날 것의 마틴 에덴은 이제 죽었다.
파도가 몰아친다. 그는 저 떠오르는 태양에서부터 떠밀려 이곳에 잠시 머무르는 것 같다. 마틴 에덴이라는 타이틀이 등장할 때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터널을 기억한다. 그는 다시 일어서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태양을 향해,마음의 불꽃을 향해, 사랑을 향해, 욕망을 향해 그리고 그 자신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