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요한 밤을 일깨워 줄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을 가진 영화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당신은 의문이 안 들어?
몸과 마음이 시린 한 겨울날에 개봉한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클레어 키컨의 베스트셀러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1985년 아일랜드 소도시를 배경으로 석탄 판매상인 빌 펄롱이 어느 날 마을에 있는 수녀원이 가진 남모를 비밀을 알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한 소녀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억지로 수녀원에 갇히고 마는 장면을 목격한 것인데, 빌은 그날 이후로 밤잠을 설치며 이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그와 함께 자신의 상처 많았던 어린 시절의 잔상이 겹쳐진다. 빌은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옹기종기 귀여운 다섯 딸과 함께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아도 머지않아 다가올 성탄절을 기다리는 여느 가정처럼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 해갈되지 않은 묵은 감정들이 그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실망스러웠던 크리스마스 선물, 친부의 존재, 그때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눈물과 같은 것들. 이 길고 긴 삶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라 치부할 수 있는 기억들이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는 씻겨지지 않는 석탄 가루처럼 남아있는 것은 그것들이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사소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이의 남편으로서, 자식들의 아버지로서 굳건히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그의 내면 속 일말의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연히 목격한 수녀원 앞에서의 사건과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는 빌의 태도는 단순히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양심에 관한 문제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한 사람이 걸어온 인생과 그 과정에서 얻었던 작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을 차분히 되짚으며 영화 말미에 내릴 빌의 선택에 거룩한 빛을 더해준다. 이는 사람에 대한 구원이 단순히 연민이나 동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이 함께 따뜻해질 수 있음을, 그리하여 삶은 때때로 찾아오는 작은 순간들을 통해 그 의미가 시간을 초월해 재해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여느 작품들과 뚜렷하게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는 만큼 영화는 전반적으로 책의 문장 하나하나를 눈으로 담는 듯한 문학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느리고 조용하다. 그래서 수녀원에서 들리는 소음이나 소녀의 울음소리, 마음이 복잡한 빌이 까맣게 더러워진 자신의 손을 평소보다 힘주어 닦아낼 때의 상황들이 더욱 부각되어 다가온다. 대사 자체도 많지 않은 편이니 여러 방면에서 빌의 감정을 묘사한다. 소리, 조명 그리고 유독 길게 표정을 잡아주는 씬들을 통해서 말이다. 여기서 빌을 연기한 킬리언 머피가 배우로서 가진 매력은 십분 발휘된다.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에서도 엄청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는 편이지만 특히 이 영화에서는 저음으로 내뱉는 몇 마디의 말은 그 자체로 호소력 있었고 말하지 않는 순간에는 그의 깊고 묘한 눈빛으로 그의 심연을 말하고 있었다.
겨울이 오면 밤이 길어지고 그래서인지 온 세상이 더욱 고요하게만 느껴진다. 인생에서도 이런 시간들은 지독하게 우리를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무도 없이 홀로 남겨진 것만 같고 겹겹이 쌓아 올린 삶의 층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이런 차가운 시련들 속에서 침묵하지 않기를 염원하는 영화다. 고요할수록 작디작은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는 법이니까.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소하다 할지라도 돌이켜보면 우리의 지난한 삶을 이어가게 하는 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때문이 아니었나. 그러니 세상을 향해 꿈틀거리는 작은 몸짓도, 용기 내어 내뱉는 말 한마디도 조금씩 모이면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들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파장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모든 이의 삶에 따뜻한 겨울을 많이 만날 수 있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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