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한 편의 시처럼 담대하게 불꽃으로 달려가는 이들의 영화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현장에선 절대 당황하거나 힘든 표시내면 안돼.
영화 <소방관>2001년 발생했던 홍제동 화재 사건을 바탕으로 그려낸 영화 <소방관>은 그 당시 열악했던 소방관들의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적 사명을 다해 불길로 뛰어들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절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전에도 <극비수사>와 <암수살인> 등 실화를 바탕으로 다룬 작품들을 작업해 왔던 곽경택 감독의 신작인데, 작품의 전반적인 전개나 대사와 같은 것들은 다소 투박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2000년 대 초반의 시기를 다루면서 당시 소방관의 현실, 예를 들면 장비 문제라던가(실제로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을 입어야 했다) 좁은 길에 불법으로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을 해결할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것,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국가공무원의 신분이 아니었던 점들을 하나하나 읊어주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이렇게 차분하게 보여주는 사실 관계들 속에서 등장하는 리얼한 화재 현장의 장면들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듯하고 뜨거운 어둠의 구렁텅이로 한없이 빠져들 것만 같은 긴박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빠르게 요구조자 수색을 해야 하는 현장에서 공기호흡기를 쓴 소방관들의 모습은 거의 눈 밖에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독 클로즈업되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각 인물들의 간절한 눈빛과 감정에 자연스레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는 '소방관의 기도'라는 유명한 시가 언급되기도 한다. 미국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한 뒤의 죄책감에 쓴 시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홍제동 화재 사건에서 순직하신 한 소방관의 책상에도 이 시가 붙여져 있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생각해 보면 영화 <소방관>은 한 편의 시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이 가진 속도나 각 캐릭터의 감정들을 풀어나가는 전개, 갈등 뒤에 찾아오는 깨달음과 소회 같은 것들이 말이다.
사람이 보인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이란 일반인의 시선에는 무섭게 번지는 불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히어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은 그들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가진 개개인일 뿐이다. 사람일 뿐이다. 점심에는 동네 단골 국밥집에서 밥을 먹고 서로의 등에 남겨진 화상 자국을 보며 영광의 상처라도 되는 양 웃어넘기고 서로를 형동생이라 부르며 아껴주는, 그래도 가끔은 불이 무섭고 죽음이 두렵고 잃어버린 동료가 그리운, 그런 사람.
영화 <소방관>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도 눈여겨보게 된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아가려면 힘들었던 기억들은 빨리 훌훌 털어버려야 하는 게 맞지만 정작 세상이 쉽게 그날의 일을 잊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화가 나고 예민해지는 것 같다는 대사가 있었다. 본디 기억이란 꺼져가는 불씨처럼 사라져 가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소방관은 무섭게 타오르는 불을 향해 가는 사람이니 무섭고 힘든 것을 직면하고 해소하는 과정이 그 누구보다도 어려울 테다. 업무의 강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말이다.
영화 <소방관>하지만 그런 모두가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음에도 어디선가 불이 나면 생각을 멈추고 오로지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달려 나가는 의지와 신념이 정말 대단하다. 이건 단지 직업적 사명 혹은 직업적 의무라는 것에서 벗어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두려움을 숨기고 싶어 구차한 변명을 나열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가야 할 길에만 매진하는 모습은 참 멋있고 아름답지 않은가. 그것은 개인의 특출 난 신념으로만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보여준 것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불길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가져다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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