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시대일수록 확고해지는 감정의 근원을 찾아가는 영화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What kind of American are you?
미국의 유명 독립 예술 영화 제작 배급사인 A24의 '첫 블록버스터' 작품이라는 문구를 메인으로 걸고 있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그야말로 나의 예상을 뒤엎는 영화였다. 무수히 쏟아지는 개봉 영화들 중 이 영화의 메인 포스터는 언뜻 보기에 뻔하고 흔한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 그러니까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강렬한 인상도 없어서 금방 기억 속에서 휘발되고 마는 작품 중 하나일 것만 같았고 특히 '시빌 워'라는 타이틀 뒤에 붙은 '분열의 시대'라는 부제목이 그런 나의 생각에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단서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 영화는 스토리, 연출, 관점 그 모든 면에서 여느 전쟁 영화와는 달리 상당히 독특하고 새롭게 느껴졌고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야기는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또 한 번 내전이 발생했다는 가상의 상황 속에서 진행된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주가 있는 서부군과 플로리다 동맹의 분리독립으로 내전이 발발한 가운데 베테랑 종군 기자 '리'는 세 명의 기자들과 함께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을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입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최후의 격전지를 향해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영화는 일종의 로드무비와 같은 형식을 취함으로써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게 먼 길을 이동하는 주인공들이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심리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특히 오랫동안 여러 나라의 전쟁 속 참혹한 사건들을 사진으로 담아 왔던 '리'는 자신의 카메라가 이제는 조국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워싱턴으로 향하는 길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삶의 궤적을 되짚어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를 줄곧 존경해 왔던, 종군기자를 꿈꾸고 있는 어린 소녀 '제시'가 이 여정에 합류했다는 점에 있다. 몇몇 대사에서 '제시'가 '리'의 젊은 시절과 닮았다고 언급될 만큼 '제시'는 '리'라는 캐릭터의 과거이자 돌이킬 수 없는 시작점이라는 면에서 두 사람은 마치 하나의 궤도를 공전하는 두 행성을 보는 듯하다. 그리하여 겁이 많고 감정적인 '제시'와 유능하고 침착한 '리', 두 사람이 숱한 죽음의 길목을 지나온 이 여정의 끝에서 내리는 정반대의 선택은 결정적인 순간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열망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나'와 또 다른 '나'의 만남으로 그려진다는 면에서 이 영화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내전을 말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내전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만한 여지를 준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내전이라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운드와 영상미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독보적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독특하기도 했다. 이는 이 영화가 종군기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내전을 이야기함으로써 전투 상황을 동떨어진 현상이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장이라는 감각을 체험하게 한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기자들은 현실의 모습을 가장 강렬한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 매우 위험한 총격전 속에서도 군인과 전사자들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때 빗발치는 총성이 너무나 리얼하게 다가와서 매번 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더 나아가 기자들이 내전의 상황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행위 그 자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찍은 사진들 역시 하나씩 영화 중간에 인서트 된다는 점이 더욱 인상 깊었다. 우리는 흔히 역사 속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의 장면을 담아낸 유명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가 가본 적 없는 그 시대를 추측하고 거꾸로 상상해 보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참혹한 상황이 눈앞에 있고 그것을 또다시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그것이 당연한 순리이기는 해도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 새롭게 다가오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머릿속에 깊숙하게 각인되는 것 같기도 하고 현실의 모든 죽음은 처절하고 비루한데 한 장의 사진에서는 그것들이 묘하게 거룩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묘한 감정이 들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영화 중간중간에 보이는 평화로운 마을이나 숲 인근의 싱그럽고 아름다운 풍광이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상황과 대조되어 기괴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쨍쨍한 한낮에 벌어지는 사건들도 꽤 많은 편이라 영화 <미드소마>를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서늘한 공포감까지 들었다. 이처럼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이 영화의 다이나믹함은 어쩌면 내전을 경험한 이들의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숱한 감정을 총망라한 형태가 아닐까 싶다.
한 무장군인이 주인공들에게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What kind of American are you?"
이는 서부군인지, 플로리다에서 왔는지, 당신은 어느 편인지를 묻는 말이었는데 같은 나라의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 미국인'인지 구분하고 또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오느냐에 따라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예측불허의 상황임을 시사한다. 또한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좁게는 사회분열부터 분쟁,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서 위와 같은 질문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서로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사회적 혼란은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의 목적의식 혹은 거창한 대의와 어긋나기 마련이다. 어떤 이유에서 총을 들게 되었는지는 잊어버린 채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일만 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사소한 것 같아도 가장 중요한 건 그 모든 폭력, 희생, 분노, 슬픔이 나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 모호한 사상이나 이상론에 갇혀 있지 않고 그 공포의 참상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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