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존재하게 하는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영화
당신이 알아줬으면 해서... 알아줬으면 해서...
1983년 이탈리아의 어느 여름 엘리오라는 이름의 소년과 올리버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 만나 6주 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을 잔잔하면서도 강한 여운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햇살에 뜨거웠던 여름 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말하는 이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단순히 퀴어영화가 아니라 모두가 가슴 속 설렘과 아픔을 절절히 느끼게 할 만큼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기억이자 한 소년의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은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첫 만남, 그 후 올리버처럼 멋있고 이상적이고 건장한 남성의 모습과 누구나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그의 매력에 엘리오는 어떤 강렬한 동경의 감정과 호기심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later"라고 말하는 그의 말투가 거슬린다는 듯 억지로 그 사람의 단점 아닌 단점을 찾아내려 하기도 하고, 본인과 그의 관계에 대해 깊이 신경 쓰기도 한다. 이를테면, 엘리오가 바흐의 곡을 연주하던 때에 올리버가 관심을 가지자 "이 곡을 싫어할 줄 알았는데"라고 말을 하는데, 후의 그의 메모를 살펴보면 그의 진심은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라고 묻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올리버가 다른 여자와 춤추는 모습을 보며 은근한 질투심을 느낀다던가, 자정에 만나기로 한 날 온종일 시계를 바라보는 귀여운 모습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이 돌아선걸까 싶어 불안해하는 두 사람의 모습들은 아슬아슬하면서도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현실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더 강렬하게 일렁이게 만든다.
사실 이런 사랑의 시작을 엘리오의 부모님은 이미 눈치챈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여느 다른 부모들과 달리,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던 수많은 사람들과 달리 아들의 사랑에 대해 누구보다 개방적이었다. 엘리오의 어머니는 어느 날 그의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무릎 베개를 해주며 공주님이 나오는 책을 읽어주시는데 그 이야기 속의 공주를 사랑하는 사내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죽어야 할까 고뇌한다. 이 이야기에서 그의 선택지에는 맘을 고백하지 않는 선택지는 없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엘리오는 피아베 동상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올리버에게 고백한다. 후에 올리버와 엘리오가 한 밤 중 창가에 나란히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을 고려한다면 그가 그 고백을 들었던 순간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왜 이 이야기가 동성애를 바탕으로 전개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1983년이라는 시대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마 지금 보다도 훨씬 부정적이었을 테고 그러한 시대적인 한계가 그들의 사랑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그들의 이러한 사랑이 남들보다 조금은 다르고, 특별하기에. 오직 이러한 맘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오로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다소 개방적인 가정 분위기로 엘리오는 고백에 있어서 큰 두려움이 있었던 건 아닐 듯싶다. 다만 그와 달리 올리버의 입장에서는 그 사랑의 시작이 황홀하면서도 혹시나 엘리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분명 있었을 테다. 또한 엘리오도 그런 그를 보며 '아무에게도 이 관계를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아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둘의 사랑이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고 그들의 망설임 그리고 이를 뛰어넘는 강한 용기가 이 영화에서 더욱 극대화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
그러한 조심스러운 사랑과 관련해서 영화 제목처럼 서로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그들의 상징적인 사랑의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아마 '일체성' 혹은 '합일성'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시작하면 그 사람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특히 이들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한다면 나와 마음이 같은 한 사람을 찾는 게 다른 누구보다도 흔치 않은 일이기에. 엘리오와 올리버의 만남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의 사랑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과도 같은 격일 것이다.
이처럼 당신을 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이 사랑은 이 영화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몇몇 장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살구의 어원일 것이다. 사람들마다 이것에 대해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엘리오의 아버지와 올리버가 살구의 어원이 아랍어에서 비롯된 것이니, 라틴어라서 그리스에서 시작한 것이니 하는 논쟁에서 보이듯이 역설적으로 살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이름이 본래 하나의 근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태초부터 하나였던 것이 이름만 달리할 뿐 원래 하나였음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6주 동안 올리버가 묵게 되는 방의 모양 또한 이런 합일의 구조를 보여준다. 이 방은 방문이 따로 있어서 엘리오와 올리버는 각자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지만 사실 들어가게 되면 욕실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로 연결되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이 이들의 사랑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엘리오가 올리버를 데리고 갔던 그의 아지트와도 같은 연못(호수)은 산에서 바로 내려올 만큼 엄청 차가운데, 이 또한 강물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기 이전에 본래 하나였던 상징적인 장소이다.
외부적인 합일성의 상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올리버는 유태인 목걸이를 차고 다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엘리오 또한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숨기려 하지 않고, 그를 따라 똑같이 목걸이를 걸고 다니게 된다. 이런 장면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어느새 변하게 함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닮아가려고 하는 이 행동을 통해 정신적으로 그들이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 더욱 절실히 보이는 것 같다.
이야기가 후반에 이르러 6주의 시간이 흐르고 엘리오는 올리버를 떠나보낸다. 여름이 지나 겨울이 되고 그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을 때 마르치아의 전화 목소리는 한 번에 분간하지 못하던 바로 그 엘리오가 올리버의 목소리는 단번에 알아듣는다. 비록 올리버는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편재한 시선들에 못 이겨 평범한 결혼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 후 엘리오는 엔딩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바라보며, 그만큼 뜨거웠던 여름날의 추억을 떠올리듯 계속해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올리버를 떠나보낸 후 엘리오의 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 아픈 감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 맘을 도려내버리고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와도 우리는 그 아픔 때문에 행복했던 순간들 마저 지워버리려 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던, 나의 일부와도 같은 그 사랑을 포기하려 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우리는 사랑 앞에서 너무나도 많이, 망설인다. 상처받을까봐, 혹은 이별이 두려워서. 그래서 마르치아도 엘리오에게 자신의 맘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반면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을 했다. 사랑 앞에서 둘은 조금은 달랐지만 마르치아도 후에는 그에게 영원히 친구가 되리라 약속하며 동시에 "사랑해"라고 말한다. 올리버와 엘리오가 처음 광장에 같이 나와 테이블에 앉아서 나누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여름이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엘리오에게 그럼 여름이 오면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이 오면 여름이 기다려지는 거냐고 물어보던 올리버. 우리의 사랑도 이 두 계절을 닮았다. 뜨거운 여름 앞에서는 차가운 겨울을 보듯이, 사랑 앞에서 머나먼 날 상처받을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겨울이 찾아오면 여름을 회상하듯 아팠던 기억들은 이내 사라지고 행복했던 그 날의 찬란했던 순간들만 떠오른다.
그런 그들과 우리의 아름다운 사랑을 위하여, 상처받길 두려워하며 망설이지 말자. 어머니가 읽어주시던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너무나 사랑하는 감정이 열렬하여 맘을 고백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마음으로 후회 없이 사랑하자. 닳디 닳아 녹슬어버린 동상이 물 위로 건져 올려지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역사로 남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는 그 고귀한 아름다움처럼 우리의 사랑도 그러하니까.
평점: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