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런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이것은 불 같은 폭력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진짜 사랑에 대한 영화

by FREESIA
빙고!
common.jpeg 출처: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세 여자의 돈과 사랑,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복합적인 욕망을 낱낱이 해부하는 <에밀리아 페레즈>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굉장히 독특한 매력의 뮤지컬 영화다. 이 작품은 개봉 전부터 칸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국제영화제를 휩쓸며 많은 관심을 받아왔는데 특히, 뮤지컬 영화의 대표작인 <라라랜드>를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는 나에게 있어서는 오랜만에 맛본 신세계와도 같았다.


멕시코의 마약왕이자 갱단 보스인 한 남자로부터 여자가 되고 싶다는 거액의 의뢰를 받은 변호사 리타. 그녀는 직업적 능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범죄자들을 변호하고 있는 현실에 질려버렸고 더군다나 직장에서조차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의 제안에 수락한다. 남자는 리타의 도움으로 그토록 꿈꾸던 여자 '에밀리아 페레즈'로 다시 태어났고 그동안의 과거를 지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풍족한 삶을 살고 있던 리타 앞에 그가, 아니 '에밀리아 페레즈'가 나타났다.


'우연히 온 거 아니야.'


그녀가 리타를 다시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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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영화 초반부 리타가 아내를 살인한 남자를 변호하기 위해 변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이것은 폭력이 아니라 사랑의 이야기'라는 말은 사실 이 영화의 전반을 아우르는 말이다. 즉, 이것은 폭력의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본질적인 사랑을 향해 가는 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여기서 폭력이란 에멜리아 페레즈가 과거 갱단의 보스로서 저지른 극악무도한 만행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성정체성을 외면하고 가두려 했던 스스로에 대한 폭력을 뜻하기도 한다. 본인에 대한 억압을 멈추고 그토록 바라던 여자의 삶을 살게 된 에밀리아는 극 중반부에 들어서는 멕시코에서 갖은 범죄로 인해 실종된 사람들의 유해를 찾아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며 마치 속죄하듯 세상에 사랑을 베푸는 두 번째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을 해주었던 의사의 말처럼 외모를 바꾸고 성별을 바꿀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영혼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에밀리아는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했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 수는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했으니 스스로 걸어 잠근 과거로 다시 발을 들인 셈이다. 친척으로서 보호해 주겠다는 명분으로 자식들과 아내인 제시를 기어이 곁에 두게 되었지만 그녀의 갈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저지른 죄까지 들춰내며 실종자의 가족들을 도왔고 이것은 자신의 공허했던 삶을 채워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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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사랑을 위해 다리를 얻고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처럼 이토록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삶은 그녀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겉으로는 이상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위대한 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정작 가족들 앞에서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기에 제시와의 관계는 더욱더 어긋나고 간신히 일궜던 평온한 삶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에밀리아는 바라던 대로 멀리 떠나지 못한 채 자신이 잊으려 했던 과거로 다시 돌아와 스스로 끝맺음을 짓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조금은 어둡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매혹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영화가 택한 뮤지컬이라는 양식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에서 대부분의 대사는 스페인어로 이루어지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비교적 이 언어를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나지막이 내뱉는 식의 노래가 곁들여지면 그 말들이 마치 주문을 외는 것 같기도 해서 일종의 의식을 거행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더 나아가 뮤지컬식 음악은 격정적인 순간마저도 부드럽고 웅장하게 표현된다고만 여겼었는데 <에밀리아 페레즈>는 굉장히 트렌디하고 도전적이면서도 거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common (1).jpeg 출처: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에밀리아 페레즈, 그녀 인생의 목표였던 '폭력적이었던 삶으로부터의 탈피'는 실패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가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고도 생각된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삶을 살아가기 이전, 마약왕 '마니타스'의 삶을 살아가던 시절에도 사랑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그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빛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마니타스가 무자비하게 범죄를 일삼던 때에도 도처에는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에밀리아 페레즈가 되어서는 얻을 수 없는 제시와 자식들을 향한 사랑을 자신의 과거인 마니타스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폭력적이고 절망스럽고 희망 없는 삶 속에서도 우리는 기꺼이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곳에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이 에밀리아 페레즈에게는 비로소 얻은 자유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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