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쓴 세상에 고함치는 영화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랑스군인 에두아르와 알베르. 그곳에서 알베르를 구해주다 얼굴 하관을 잃고만 에두아르는 절망감에 빠지지만 그의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가릴 가면을 스스로 제작하고, 알베르와 함께 전쟁 기념비 설립과 관련해 대사기극을 펼치는 이야기다. 이는 <오르부아르>라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실상을 잘 묘사하고 그 전쟁만큼 잔인한 인간들의 모습들을 잘 짚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더불어 소설에서는 수단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화려한 마스크들을 볼 수 있어 보는 눈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사기극이 전개되는 과정이 엉뚱하고, 재치 있게 전개되어 너무 무겁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 더불어 알베르라는 인물이 에두아르의 사기극을 돕게 되면서 얽히고 얽힌 관계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 지를 살펴보는 것 또한 이 영화의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은 2차 전쟁보다도 사상자수만 놓고 본다면 그 피해가 더 클 정도로 잔혹했다고 한다. 이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군은 150만여명이 사망하고 500만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영화는 독일을 상대로 한 참호전의 광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때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이 중단될 것이라는 메세지가 비밀리에 전달된다. 모든 전쟁이 끝이 날 듯 보였지만 무공이 필요했던 헨리는 군에서 가장 나이 많은 병사와 가장 어린 병사를 앞세워 독일군 진영을 망보고 오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이때 헨리는 전쟁을 끝내지 않기 위해 뒤에서 그 두 병사를 총으로 쏴 죽이고 전쟁은 재개된다.
그 참호전에서 알베르는 두 병사의 죽음이 헨리의 악행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게 되고 헨리는 그런 그를 죽이려 한다. 이때, 말의 시체와 함께 땅에 묻힌 알베르는 자신이 죽었다고 내레이션으로 말한다. 여기서 말이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의 등장으로 말이 실제적으로 전쟁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시기였기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후에는 알베르가 에두아르가 만들어준 말 마스크를 들고 다니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는 전쟁에서 제 역할이 끝나버린 말의 모습처럼 자신도 죽을 운명이었지만, 죽어서도 다시 살아나야만 했던 알베르의 모습은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님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는 전쟁뿐만 아니라 에두아르의 가정사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재력가인 아버지의 엄격함 속에서 자라온 에두아르는 원작에서 자세히 드러나듯 그가 학교에서 풍자적이고 문란한 그림을 자주 그렸고, 아버지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에두아르는 '머저리'라고 쓰인 모자를 쓴 아버지의 모습을 풍자해 그림을 그리곤 한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지속된 채 에두아르는 프랑스군으로 참전하게 된다. 이때 이 부자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모습이 등장한다. 어릴 적 자신을 혼내는 아버지는 위에서 그를 쳐다보고, 에두아르는 그런 아버지를 위로 올려다본다. 이런 모습은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성장한 에두아르가 군복을 입고 집을 떠나는 순간에도 나타난다. 아버지는 높은 계단 난간에 서서 그런 에두아르를 바라보고 에두아르는 어릴 적처럼 아버지를 위로 올려다본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높고 낮은 곳에 위치한 두 사람의 모습이 어쩌면 이 부자의 관계를 가장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아버지가 우연히 정신을 잃은 후, 전사한 자신의 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아들을 위하여 전쟁 기념비 사업에 막대한 지원금을 후원하고 대신 자신이 기념비 출품작 중 작품 선정권을 얻게 된다. 여기서 되게 아이러니하게도 에두아르는 본래 사기극의 일환으로 시작한 출품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형국은 아들은 작품을 만들고 아버지는 그런 그를 뒤에서 지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궁극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함께 세우려고 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이 부자의 이야기가 영화가 다루는 시대적 상황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에두아르는 자신의 상처를 가리기 위하여 가면을 쓴다. 하지만 한 장면에서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가면이 가리지 못한 상처의 일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가면에 가려진 것이 누군가의 상처인들, 또 그런 누군가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이기심인들 어찌 가려질 수 있겠는가.
이를테면, 헨리가 주도한 사업과 같은 전사자 묘지사업, 얼굴 성형 시술, 전쟁 기념 시계 판매와 같은 것들이 있다. 이때,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알베르가 전쟁 시계를 홍보하는 판넬을 들고 거리에 나와있을 때 우연히 마주친 동료 병사들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알베르는 함께한 동료들을 팔아먹으려 했던 자신과 그 현실에 푸념을 늘어놓는데 여기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전쟁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음의 끝을 공허히 헤매다 돌아왔음에도 정작 사람들은 그 실상을 알려하지 않고 그 전쟁이 주는 이념을 이용하려는 장삿속에 빠져 있었다. 반면 에두아르는 그런 세상을 상대로 사기극을 펼치고 어마어마한 돈을 모아 아프리카로 떠나려한다. 그러나 후에는 그런 자신의 행동에서 무의미함을 느끼는 듯 약물 중독에 빠지는 모습 또한 차마 가려지지 않은 어두운 현실, 고통을 보여주는 것일 테다.
이러한 전후의 상황과 그에 맞선 에두아르의 모습을 보며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의 일부분이 떠오른다. 전후에 돌아온 병사들이 느꼈을 심정이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신성한, 영광스러운 또는 희생 같은 쓸모없는 표현들을 들을 때마다 언제나 당혹스러웠다. 우리는 늘 그런 말들을 들어왔다. 때로는 고함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빗속에 서서도 그런 말을 들어야 했다. 오랫동안 게시판에 붙여진 게시물에서도 그런 말들을 읽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영광스럽다는 것 속에서 영광스러운 것을 본 적도 없었다.
여기서 왜 하필 입부분, 그러니까 얼굴의 하관에 부상을 당해야만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로써 주인공은 '말을 제대로 못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즉, 전쟁의 잔인함과 참혹함에 대해 사람들에게 사실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본다면 자신의 존재를 가족에게 말할 수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기념비 사업과 관련한 기사를 읽게 되고, 화려한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것은 가족과 세상에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자 한 의지적인 행동이었으리라.
사실 마스크가 보여주는 여러 얼굴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번 바꿔 쓰는 수많은 가면을 상징하는 바이기도 하다. 특히 전후에 가면을 쓰고 병사들의 죽음과 희생을 미화하려 하는 이들의 이기적인 속내를 회의하고 비판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에두아르가 사기극을 펼친 모습 또한 진짜 자신의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두아르는 오로지 누나의 그림을 그릴 때에만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마스크를 썼다. 이 장면에서 가장 사랑하는 누나를 향한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데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가 그 가면을 쓰지 않았던 때에는 그의 진정함, 간절함에서 비롯한 것이었다기 보단, 이 비정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가면이 아니었을까.
너는 너의 삶을 살 권리가 있어
난 왜 그런 너의 재능을 알아주지 못했을까
마지막에 아버지와의 만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또 개인적으로 나 스스로도 아버지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생각에 기억에 오래 머무르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에두아르를 위로 올려다보고 에두아르는 그런 아버지를 아래로 내려다본다. 어릴 적 아버지가 위에서 그를 바라보던 모습이 역전이 되고, 그 순간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일어서서, 드디어 같은 위치에 서서 함께 포옹한다.
그리고 에두아르는 충격적인 선택을 하는데, 그가 그런 결말을 가지고 온 것은 아마도 절망적인 순간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죽지 않고 버텨야만 했던 이유가 비로소 해소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알베르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듯 공식적으론 모든 일이 끝났을지라도 그들이 살았던 삶에 있어서는 진정 전쟁이 끝난 건 아니었다. 아들과 아버지의 모습을 통하여 '끝나지 않은 전쟁' 같은 이 세상에 던져주는 한 마디는
서로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고,
위로해주고,
안아주는 것.
바로 그것이 에두아르와 알베르가 죽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야만 했던, 무의미한 삶 속에서도 찾고 싶었던 인생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평점: ★★★☆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