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현실과 가까운 곳에 있었던 영화
현실은 시궁창 같고 모두가 탈출을 꿈꾼다.
어느 시대를 살아가건 각박한 삶에 지쳐 현실에서 멀리 도망쳐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그 탈출구가 바로 '영화'였다. 현실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진짜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세상을 보게 했고, 그런 세상을 통해 비로소 나의 존재를 보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이따금씩 느끼고 있는 현실과 영화 속 세상 혹은 꿈의 괴리에 대한 가슴 벅찬 해답을 건네준다.
화려한 연출과 곳곳에 등장하는 추억 속의 영화와 게임 속 캐릭터들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그 캐릭터들을 많이들 발견하던데, 내 눈에 들어왔던 건 헬로키티, 에일리언, 건담, 처키, 킹콩, 터미네이터 등이 전부였던 것 같다. 특히 중요 관람 포인트인 <샤이닝>을 보라는 말이 많았는데, 무서워서 보지는 못하고 <Btv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에서 다루었던 내용만 참고해도 충분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곳곳의 숨겨진 요소들을 찾지 못해도 영화 그 자체로도 굉장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특히 초반에 배경음악 없이 리얼한 사운드로 펼쳐지는 카레이싱 장면은 분명 아이맥스, 4DX로 보고 있는 게 아님에도 실제 경기장에 있는 듯한 박진감이 느껴졌고, 심지어 경주가 끝난 후에는 코 끝에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이외에도 파시발과 아르테미스가 무도회장에서 Bee Gees의 'Stayin' Alive'의 음악에 맞추어 공중에서 춤을 추는 장면 역시 환상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사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세계관은 꽤 거대해서 자칫 그 서사를 다루다가 이야기의 속도감을 잃어버릴 수 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는 2045년에 이러한 세상을 맞이하게 된 경위를 잘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웨이드가 지나는 길을 따라 창문으로 비치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로써 빈민촌 사람들은 사정상 이웃들과 다닥다닥 붙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정작 사람들은 소통하지 않고, 오아시스라는 세상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이 미래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적절히 묘사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웨이드의 내레이션으로 오아시스 세상을 소개한 후에서야 등장하는 <Ready Player One>이라는 영화 제목은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할 테니, 당신이 그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더 이상 관객이 아니라 게임의 참여자가 되어 영화를 즐기게 하는 효과를 주는 듯하다.
오아시스를 만들어낸 할리데이는 어린 시절, 현실 부적응자였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사람들과 마주하는 대신 접했던 게임, 영화, 만화와 같은 대중문화가 오아시스 세상의 기반이 된다. 이런 세계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아바타를 만들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돈도 벌 수 있다. 이러한 가상의 공간은 2045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사막 속 오아시스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우리가 사랑하는 대중문화의 공간이자 꿈의 공간을 IOI처럼 위협하고 폄하하는 자들에게 오아시스에서 수많은 게이머들이 저항하듯, 이 공간이 멸망하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인식하게 끔한다. H의 창고에서 오랫동안 숨겨졌던 아이언 자이언트가 드디어 '추억'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빠져나와 오아시스를 지배하려는 자들을 막기 위해 소환되는 모습과 다이토가 건담 캐릭터로 변신하여 공격하는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이 있다.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도망치지 않으면 오아시스에서 죽을 수 있음에도 끝까지 건담의 모습으로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그가 사랑하는 캐릭터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쏟아붓는, 자신이 사랑하는 문화에 대한 헌신과 그 마음의 숭고함과 장엄함까지 느껴진다. 그리하여 대중문화를 사랑하고 그 세계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으로 견고히 쌓아 올린 추억의 힘은 그 어느 것보다도 강하고 감동적이다. 소렌토가 파시발을 죽이려다 그의 손에 쥐어진 황금빛 '이스터에그'를 본 순간 그의 입가에 미세하게 번진 미소에서 대중문화가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힘을 실감하게 되듯 말이다.
현실은 차갑고 무서운 곳인 동시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이들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멀리 도망쳤지만 사실 현실은 너무나도 자주 가상의 공간을 침범해 들어온다. 오아시스 외부에는 IOI라는 기업처럼 대중문화를 악용해 뒤에서 이득을 취하고, 방해가 되면 무력도 서슴지 않는 자들이 존재한다. 그런 IOI로부터 고된 노동에 시달려 죽음에 이르게 된 아르테미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오아시스에 있는 그녀의 맘 속에서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현실의 상처다. 또한, 오아시스를 빼앗길까 봐 파시발을 찾아내려는 소렌토 무리의 모습에서 이미 안정적인 가상공간의 접속이 어려워졌음을 가늠케 한다. 파시발과 아르테미스는 IOI의 위협 속에서 서로에게 한 번씩 건네는 말이 있다.
'넌 날 용서하게 될 거야.'
한 번은 IOI의 기습 습격으로 인해 아르테미스가 파시발을 샛길로 빼내 주고, 한 번은 소렌토에게 적발될 위기에 처하자 파시발이 아르테미스를 오아시스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때 궁지에 몰린 위치에서 그들이 바라봤던 삶의 의지는 가상의 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Reality'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렇듯 이 두 인물이 게임을 하며 만난, 인간이기에 필연적이고도 감각적인 사랑의 감정은 우리를 진짜 현실의 끝이 두렵도록 만든다.
어떤 이들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단순한 모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다른 어떤 이들은 껌종이에 쓰인 성분표를 읽고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다.
그러나 현실만이 오아시스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흔드는 것만은 아니다. 즉, 현실만이 진정한 의미의 'Reality'를 실감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파시발이 1단계 미션 이후 받은 상금으로 구입한 수트는 가상의 세계에서의 감각을 현실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있다. 이 아이템은 상징적으로 가상현실이 곧 나의 현실임을 느끼게 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누군가의 손길을 이젠 현실처럼 느낄 수 있게 되고, 누군가의 공격에 온 몸으로 그 고통을 받아들이게 된다.
오아시스라는 공간에서의 만남으로 인해 요동치는 감정 또한 주인공들이 현실을 볼 수밖에 없게 하는 요인이다. 초반부 파시발은 생전의 할리데이처럼 혼자였다. 그런 그는 매번 말한다.
'나는 혼자인 게 좋아.'
어쩌면 혹독한 삶으로 인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사람들과 서서히 멀어졌던 그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그는 할리데이가 만들어 놓은 3가지 미션을 수행하면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
1. 자신의 세상에서 가끔은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가보는 것.
2. 사랑 앞에서 후회하지 않고 용기를 내 보는 것.
3.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
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세계는 현실에서 벗어난 동떨어진 탈출구의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두 세계는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다기 보다 두 공간의 공존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음을 통감한다. 이기는 게 다가 아니다. 강자의 위치에 서고, 우월한 캐릭터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스터에그를 찾듯이 그 끝을 보며 달리기보다는 곳곳에 위치한 흔적을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문화라는 영역에 있어서도,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현실이 그토록 힘겹게 느껴졌던 건 우리가 그 가치를 이기는 데에 두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파시발에게 주어진 25센트 동전처럼 이제 우리는 게임 같은 인생을 즐길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평점: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