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스스로에겐 솔직한 사람이었는지 자문하게 하는 영화
오늘 체온을 세 번 쟀는데
아픈 건 아니더라고요.
당신을 만나서 그런 것 같아요.
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는 39살 여자, 알리스.
건축학을 공부하는 19살 남자, 발타자르.
20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이 달달한 로코는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나이'에 관해 만연하게 자리 잡은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알리스는 8년간 연애를 하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매달렸다. 아마 남편과 이혼을 한 후부터 자연스레 그러한 선택을 내린 것 같다. 그런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철저하며 꼼꼼하게 처리하는 멋있는 여성이다. 똑같아 보이는 오렌지 색 표지를 보고도 그 차이를 구별해내고 당차게 재인쇄를 요구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알리스에게는 거슬리는 유형의 직장 동료가 있다. 그녀는 직장 상사에게 잘 보이려 일부러 노출이 심한 복장을 갖춰 입기도 하고, 그 앞에서 온갖 아양을 떨며 정정당당하게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얻어낸 상사의 신망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처음에는 알리스도 그녀가 행동하는 방식을 싫어했다. 하지만 후에 우연히 발타자르를 만나며 그런 그녀 또한 여느 다른 이들처럼 솔직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연히 업그레이드된 비즈니스 좌석으로 발타자르는 옆좌석의 알리스를 만나게 된다. 그런 그는 어린 나이답게 '솔직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낯 뜨거운 이탈리아어로 굿나잇 인사를 한 게 아쉬워서 다시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나 '왜 당신 같이 매력적인 여자가 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숨기지 않고 물어보는 그의 질문처럼 그에게는 사랑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 솔직함이 있다. 또, 유명한 디자이너의 전시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자신이 느낀 바를 당당하게 꼬집어낼 수 있는 모습에서도 그의 나이만큼이나 두려울 게 없는 없는 당돌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사실 나이의 많고 적고에 따라 솔직함의 여부를 구별 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극단적으로 두 주인공의 나이 차를 20살로 두고 있는 것만큼 솔직함의 문제도 극단적인 면에서 관찰해볼 수 있는 요소인 건 확실한 것 같다.)
이러한 발타자르의 모습이 이 영화에서는 특히나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면서도 알리스에게 받은 상처로 늘어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어린아이 대하듯 시리얼을 권하는 알리스에게 '나도 차 마실 줄 아는데'라고 말하는 그의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모습들이 아직은 어린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는 듯한 그의 상태를 사랑스럽게 비춰준다.
이처럼 솔직하게 사람을 대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내다볼 줄 알며 이를 표현하는 데에도 망설임 없이 적극적인 발타자르와 달리 알리스는 39년의 인생을 살면서 속세에 물들어버린 탓일까, 마냥 멋져 보였던 그녀에게서 발타자르와는 조금은 대조적인 면들을 볼 수 있다. 남자에게 기대기 싫다던 그녀도 어느 순간부터 상사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자신의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린 연하남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또한, 발타자르와 달리 유명한 디자이너의 끔찍한 작품 앞에서 혀를 내두르다가도 정작 그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녀는 이전에 책을 낸 경험이 있는 작가였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던 것만 같다. 알리스에게도 그녀가 원하던, 좋아하던 일이 있었음에도 현실에서는 그게 용납되지 않는 상황들이 분명 있었을 테고 그녀도 그 시련을 언젠가 마주했으리라.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때의 일을 숨기고 싶어 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보다도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하는 그녀이지만 패션잡지사 일 마저도 정말 알리스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된다. 더 나아가 그러지 않으려 해도 아직까지는, 39살의 나이와 여자라는 성별이 만나게 되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이게 되는 것 같다. 가장 답답한 장면이기도 했는데 이혼한 남편은 나이차가 아무리 많이 나더라도 나이 어린 여자 친구를 둘 수 있고, 알리스는 여자라서 '좀 그렇잖아'라고 말하는 남편의 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제대로 반박하지도 못하고, 또 은근히 주변인들에게 털어놓듯 자신마저도 그 시선들을 신경 쓰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엔 이야기의 마지막 즈음에 다다르면 과연 알리스가 그 짜증 나는 직장 동료와 다를 바가 뭐가 있었나 하고 돌이켜보게 된다.
그리하여 세월의 흐름에 동조하듯 알리스는 한 때, 그녀에게도 발타자르처럼 나 자신이 무엇보다 소중했고, 순수하게 내 감정을 쏟아낼 수 있었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갔다. 하지만 우연히 솔직한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잊고 있었던 상실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고, 진심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론상으로 과거에 집착하는 건 나약함의 표시 아닌가요?
발타자르는 데이트 장소로 한 건축물 내부로 그녀를 초대한다. 그가 말하기를 그 건축물은 지은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미래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에 아름답다고 한다. 그가 소개한 건축물처럼 세상과 자신의 진심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알리스와 그리고 어쩌면 이를 공감하고 있을 우리가 지향해 나아가야 할 방점이 바로 이 곳에 있음을 우리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결국엔 젊음에서 멀어진다는 본질은 나이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조차 솔직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토록 설레는 두 남녀의 이야기와 나름대로 현실적인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이 작품에 별 3점을 주어도 충분하리라.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라도 알리스가 상사에게 당당히 그의 잘못을 추궁하고, 당당하게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평점: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