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런 영화

<인게이지먼트>

사실보다 진실을 필요로 할 때를 말하는 영화

by FREESIA
난 그녀의 심장 소리가 들려요.
모스 부호처럼.
출처: 영화 <인게이지먼트>

영화 <아멜리에>의 감독 장 피에르 주네가 오드리 토투와 함께한 또 다른 작품이다. 이야기는 전쟁이 끝나리라는 희망조차 찾을 수 없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손을 자해했다는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은 5명의 군인들이 끌려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고통을 감수하고 자신의 손을 자해한 이유는 가족과 고향이 그리워서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아군과 적군의 참호 사이에 내버려지게 된다. 왠지 모를 이유로 마넥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마틸드는 시간을 거슬러 모든 사건들을 조합하여 그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사실 <아멜리에> 때와 마찬가지로 초반부에 빠르게 흘러가는 내레이션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방대하게 늘어놓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익숙지 않은 이름들과 빠르게 지나가는 줄거리를 놓쳐버리기 쉽다. 하지만 그 작은 단서들이 영화의 마지막으로 나아가면서 하나의 실마리로 합쳐지는 만큼 그 감동은 배가 되는 법이다. 또한, 지는 노을 같은 밝은 세피아톤으로 채워진 색감은 죽음이라는 끝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살고자 했던, 그리고 그의 생존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던 두 사람의 모습을 닮은 것만 같다. 더불어 볼록렌즈처럼 얼굴이 유독 부각되어 보이게 하는 연출 방식은 인물들의 표정을 더욱 강조해 보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색감과 함께 한 편의 동화 같은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다.

차보다 먼저 굽이에 도착하면 마넥은
살아 돌아올 거야.
출처: 영화 <인게이지먼트>

전쟁터에서 대통령의 사면을 받을 수 있는 얇은 전화선에 5명의 군인들이 모든 희망을 걸었던 것처럼 마틸드 또한 작은 단서들을 통해 마넥이 살아있다는 희망을 걸었다. 그런 그녀는 유명한 사설탐정을 고용하고, 후견인에게 귀여운 동정심까지 유발하며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했다.


가장 가슴이 뭉클했던 장면은 마틸드의 회상신 중 등대 위에서 마넥이 '알바트로스'라는 새에 대해 설명해주는 모습이었다. 이전에 마틸드가 'MMM'과 '알바트로스'라는 단서를 누군가의 증언으로 얻게 되는데 그 단서가 마틸드와 마넥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얼마나 고통의 나날 속에서 숨 쉬어야 했는지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 전달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손을 자해했다. 또 어떤 이는 자녀가 한 명만 더 있으면 참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대신해 친구와 아내가 대신 임신을 하도록 부탁하는 기가 막힌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20초 내에 표 검사원이 온다면 마넥이 살아서 돌아올 거야'라는 식으로 사소한 일들에 주문을 걸어보며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이도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건 참전한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아픈 시간들을 인내해야 했던 군인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결국에 전쟁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쉬이 비켜가지 않는 고통스런 기억이자 아픔의 역사임을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봐. 알바트로스는 고집이 세.
자기가 바람보다 끈질기다는 걸 알고 있지.
출처: 영화 <인게이지먼트>

마틸드가 마주한 사실들이 모두 마넥의 죽음을 가리킬 때 그녀는 잠시 주춤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티나는 그 사실들로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를 대신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가행한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보는 모든 사실이 사건의 총체적인 결말로 인도하지 않는다. 모든 사실은 결국엔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법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 사실은 인간의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인하기에 오류가 생기기도 하며 내가 보지 못한 사실들로 인해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 마틸드는 그 숱한 사실들 속에서 마넥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진실을 찾고자 노력했다. 반면, 티나는 그 사실들에만 의존해 살아가다 뒤늦게 남편의 유서를 발견하고 눈물을 흘린다.


'복수는 소용없으니 내가 없더라도 행복하게 살아.'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들 어디에도 남편의 진심은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틸드가 마넥을 찾아가는 과정은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그녀가 그 여정에서 믿어야 했던 건 명확한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들이 말하지 않고 있는 '빈틈'이었다. 그 '빈틈'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를, 수많은 가능성이 잠재된 그 사실들의 여백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만큼 전쟁이 얼마나 인간이 불가능한 것조차 믿게 하는지,

희박한 가능성과 희망에

운명을 걸게 되는지를 느끼게 한다.


영화는 끝내 마넥을 찾아내고야 마는 마틸드를 보여준다. 이는 그런 전쟁의 잔혹함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자 하는 생의 의지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무한한 의지의 힘과 그 강인함을 겸허히 실감하게끔 한다.


그렇게 전쟁이라는 시간은 많은 사람들을 알바트로스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평점: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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