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서 있게 하는 이 두 발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하는 영화
여긴 우리 집이 아니야.
찰리는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15살 소년이다. 소년은 외롭다. 집도 있고, 아빠도 있으나 사랑 어린 가족이 없다. 그래서 늘 고모와 함께 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사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누군가와의 식사자리에서 예절이라고는 찾을 수 없고,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찰리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혼자서 끼니를 때우는 게 일상이었단 걸 직감할 수 있듯이. 그런 찰리가 우연히 경주마 조련사 델을 만나게 되고 '린 온 피트'라는 말에 대한 남모를 애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혹하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말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그래도 경주마로서의 실력이 떨어지자 매정하게 멕시코로 팔아버리려 한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갈 데 없는 찰리는 피트에게서 자신을 본다. 그리고 피트와 함께 고모 집을 찾아서 불안한 여정을 시작한다. 과연 찰리와 피트가 걸어가는 길목에는 희망이 있을까.
영화 자체는 잔잔하면서도 섬세하다. 찰리와 피트를 둘러싼 노을 진 풍광은 삶의 모든 걱정, 노여움을 사그라들게 하고 저 먼발치에는 희망이 있으리라는 따뜻한 위로를 안겨준다. 영화는 동시에 현실적이기도 하다. 피트와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위기 속에서 비이상적이고, 차가운 사람들과 세상, 그리고 스스로 조차도 살아남기 위해 점점 독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수난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하고야 마는 한 소년의 홀로서기는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본 시련이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성장기였다.
사람이 갈 데가 없으면 꼼짝할 수가 없어.
이 냉혹한 세상 사람들에 실망한 찰리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한다. 그런 소년이 바라던 곳은 누군가의 품 안에서 쉴 곳이 아니다. 찰리는 말 피트에게 절대 올라타지 않고, 함께 걸어가는 길을 선택한다. 소년에게는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동반자가 필요했을 뿐이다.
영화 마지막에서 이른 아침, 늘 그랬듯이 열심히 달리는 찰리의 뒷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그리고 배경음악인 'the world's greatest'의 가사는 지난 여정과 찰리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소년은 산이고, 큰 나무였다. 바람이었고, 계곡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었다. 거인이었고, 독수리였으며 정글의 사자였다. 그리고 영웅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인생에서 한 번쯤 홀로서기의 시간을 맞이한다. 세상과 이상의 괴리에서 힘들었고, 그럼에도 내가 잘 살고 있단 걸 보여주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기대지도 않았던 시간들 말이다. 하지만 그 고독한 여정 속에서, 묵묵히 나의 길을 나아가는 의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가 한 걸음 성장해있음을 보게 한다.
피트(Pete)에게 의지했고, 자신의 두발에(feet)에 모든 운명을 걸었던 시리도록 찬란한 그날의 기억이 오늘의 나에게도 힘이 되길. 그리고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찰리'에게 다음 시를 인용해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어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평점: ★★★☆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