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사람의 뜻이 운명을 가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한 뒤 쓰는 리뷰입니다. 또한,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돈, 명예, 출세 무슨 터를 알고 싶소?
<관상>은 왕이 될 상을 찾아서,
<명당>은 왕이 될 땅을 찾아서.
조승우, 지성, 백윤식, 김성균을 비롯해 탄탄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명당>이라는 영화는 권력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명품 사극이라 평할 수도 있지만 군데군데 가벼운 유머 코드까지 더해져 올 추석 온 가족과 함께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풍수지리를 통해 땅의 기운을 파악하고, 또 이를 통하여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풍수지리 사상에 대한 믿음과 관심은 삼국시대 때부터 전해져 내려와 오늘날까지 우리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 조상의 묏자리나 좋은 터에 대한 애착을 권력에 대입하려는 강한 연결성은 다소 그 개연성을 의심케 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곧 관객을 집중시키는 깔끔하고 빠른 스토리 전개는 우리의 시선을 땅이 아닌 그 땅을 둘러싼 인물들에게 돌린다. 그리하여 <명당>의 7명 주요 인물들은 한 명씩 선택의 순간들을 맞이하곤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에 대해 말할까, 말까. 세도가에 저항할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 충신이 될 것인가, 왕이 될 것인가. 아버지를 따를 것인가, 권력을 차지할 것인가. 욕망을 따를 것인가, 백성을 위한 세상을 택할 것인가. 그 순간마다 각 인물들이 선택한 답의 연속들이 만나 우리의 역사는 참담한 파국을 맞이하기도 한다. 지관 박재상의 첫 내레이션처럼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땅의 기운'이 아니라 그 땅을 탐하는 '인간의 뜻'인 것이다.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땅과 권력을 두고 팽팽한 대립구도를 가지고 있는 7인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겠다. 우선 헌종을 연기했던 이원근 배우는 세도정치 시기의 좌불안석의 왕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뒤로 펼쳐지는 수많은 신하,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왕이라는 명분으로 불안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그가 느껴야 했던 위압감을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과 적절한 연출력의 조화로 묘사한다. 박재상의 사업 파트너인 구용식 역의 유재명 배우 또한 다른 배우들 못지않은 씬스틸러로 등장한다. 최근 개봉한 <죄 많은 소녀>에서 한 학생의 자살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역을 맡아 현실적이면서도 섬세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그가 이 영화에서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사극 영화에 소소한 재미를 선사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다음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흥선을 연기했던 배우 지성이었다. 처음에는 선의의 마음으로, 시간이 지나서는 점점 마음속 그의 욕망을 품고, 폭주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타락하고, 선과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더욱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김좌근 역을 맡았던 백윤식 배우 역시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우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여주며, 김성균 배우가 맡았던 김병기라는 캐릭터 또한 역시 권력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배신하는 선택 또한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함께 그 동기가 잘 드러나 흥선이라는 캐릭터만큼이나 매력적인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문채원 배우가 연기한 초선과 조승우 배우가 연기한 박재상이라는 인물이다. 왕을 향한, 그리고 백성을 향한 일편단심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동기가 명백하지 않아 두 캐릭터에 큰 감정이입이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돈이 있는 자들은 좋은 땅을 사들이고, 또 없는 자들의 자리를 빼앗으며 살아왔다. 권력까지 있는 자들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끊을 수도 없이 자라나는 욕망에 충성하고 만다. 그런 모습들이 비단 옛날 옛적의 일만은 아니다. 인생에서 다른 좋은 뜻을 두기보다는 좋은 땅 하나 마련해두는 것이 내 앞날을 보장하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흔히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땅을 가지고 싸우는 이들의 모습이나 오늘날, 땅 때문에 울고 웃는 모습이나 크게 변한 건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과 역사에서 마주한 희로애락은 바로 땅 때문이요, 풍수지리 때문인가. 지관의 말처럼, 좋은 땅을 두고도 계략으로 땅을 차지하려고 들면 그곳은 모두 흉지가 되어버린다. 사람들이 선택의 순간마다 어떤 뜻을 두었느냐에 따라 이 땅의 운명은 바뀌었을 것이다. 이 땅을 명당으로 만들지, 흉지로 만들지는 바로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평점: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