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런 영화

<나비잠>

선선한 여름밤을 닮은 영화

by FREESIA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요?
movie_image.jpg 출처: 영화 <나비잠>

무더위가 지나가고 선선한 여름 바람을 맞는 저녁이면, 괜스레 지난 나날이 떠오르곤 한다. 한순간 뜨겁게 타오르다가도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이날의 계절처럼 우리의 감정은 왜 이리도 아쉬웁게 그 열정을 다하지 못하나. 여기 여름의 끝자락에서 또 다른 계절을 바라보고 있는 요즘 같은 날씨에 잘 어울리는 영화가 왔다. <나비잠>은 눈부신 햇살을 담아낸 영상미와 잔잔한 분위기로 뜨거운 여름이 지나간 우리의 허전한 마음에 천천히 내려앉는다. 마치 어느 순간, 맘에 스며든 사랑이란 감정처럼.


일본에 유학 온 작가 지망생 찬해(김재욱)는 우연히 베스트셀러 작가인 료코(나카야마 미호)를 만난다. 료코의 개를 산책시켜주고, 그녀의 소설 원고를 타이핑하는 작업을 도와주며 둘은 가까워진다. 잃어버린 만년필이 맺어준 인연은 어느새 깊은 사랑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유전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료코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글도 제대로 써지지 않고, 중요한 일마저 조금씩 잊어버리는 그녀는 과연 찬해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까.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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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나비잠>

사실 <나비잠>은 조금은 진부한 멜로드라마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책을 읽는 것 같은 섬세한 감정선으로 료코와 찬해의 이야기를 한층 특별하게 만든다. 특히 '우연'과 '기억'을 통해 사랑을 감성적으로 관찰하는 이 영화는 서서히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찬해는 학비와 학업 사이에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그는 그런 일상에 허무함을 느끼고 버는 돈을 족족 파친코에 날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료코라는 여자를 만난다.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을 앓게 된 료코는 자신의 가치관을 조금씩 바꿔나가며 스스로를 지켜나가기 시작한다. 독자들과 전혀 만나지 않던 그녀가 더 이상 소설 뒤에 숨지 않기로 결심하고,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수업을 열기도 한다. 찬해의 도움으로 서재의 책 위치를 조정하고, 글을 쓰는 방식도 바꿔나간다.


'절대'라는 건 없다며 '우연'의 힘을 믿기 시작한 그녀.

'우연'이지만 그 안에도 무언가가 있으리라 믿고 싶은 그.

<나비잠>은 그 우연의 힘을, 그리고 사랑의 영원함을 료코와 찬해의 사랑으로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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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나비잠>

하지만 료코는 찬해를 떠난다. 사랑의 감정이 식은 게 아니다. 그녀가 써 내려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찬해를 위해 물러난 것이다.


기억이 뒤죽박죽 어지럽혀지고,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하는 이에 대한 감정마저 예전 같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새에 소중했던 기억은 어딘가에, 혹은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처럼 남아있는가 보다. 2년이란 시간이 흘러 료코를 다시 찾아온 찬해. 자신을 잊어버렸으리라 생각하며 그는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잘 잤어요?'

'괜찮아요?'

'마츠무라' 료코라는 그녀의 진짜 이름, 그리고 소찬해라는 당신의 이름을 내뱉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들의 지나간 추억들이 그려진다. 추억 속에 잠자고 있던 말이 깨우는 기억의 파편. 그 기억의 조각이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마저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틀에 박히지 않은 방식을 원했던 료코는 찬해의 도움으로 서재를 새롭게 바꿨었다. 색의 채도, 명도에 따라 무작위로 정리된 책들의 모습이 꽤나 아름답다. 그래,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일련의 기억이 아니다. 나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던 순간의 빛나는 기억에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사랑을 한다.

movie_image (5).jpg 출처: 영화 <나비잠>

계절도 감정도 쉽게 사라지는 줄 알았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무덥게 찾아오는 여름의 계절을 닮아, 료코가 그러했던 것처럼 잠시 물러나는 것뿐이다. 한번 마음에 들어온 계절의 온도도, 사랑의 애틋함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 글이, 이 영화가 당신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길.


평점: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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