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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Oct 20. 2018

<생 로랑>

아름다움의 뒷모습을 보여준 영화

아름답잖아, 이해하려 하지 마. 찬란할수록 또렷해지는 거야.
출처: 영화 <생 로랑>

150분의 생각보다 긴 러닝타임. 하지만 그 긴 시간에 지루한 일대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천재적인 디자이너이자 존재 자체가 브랜드화되었던 이브 생 로랑이란 '사람'의 삶과 그의 정신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를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아니, 그의 모든 걸 이해하려 하는 우리의 불필요한 노력 자체가 오히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운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니까.


<생 로랑>은 강렬한 색감과 네온사인 빛이 어우러진 미장센의 향연을 선사한다. 특히 생 로랑의 뮤즈였던 베티를 만나는 장면은 말 그대로 섹시하다. 중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서 일순간, 생 로랑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가 그녀가 되고, 그녀가 그가 되는 상황을 가장 영화적으로 잘 구현해낸 장면이 아닐까.


더 나아가 1968년 5월 혁명부터 80년대를 아울러 프랑스의 시대적 분위기는 이브 생 로랑의 컬렉션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변혁운동을 펼치던 시대 상황과 시대별로 달라지는 패션쇼가 이분할로 나뉘어 보여지는 장면은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뿐만 아니라 몬드리안과 앤디 워홀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계의 거장과의 오마주 컬렉션을 펼치기도 했던 이브 생 로랑. 다른 누구도 아닌 진정한 생 로랑의 전부가 깃든 76년도 컬렉션의 패션쇼를 몬드리안의 작품 구성을 본 따 보여주는 화면 구성 방식도 매우 스타일리쉬하다.


하지만 영화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느리다는 것. 하루를 달리하며 변화하는 게 유행이고, 패션이고, 스타일이다. 그 안에서 최고의 위치에 서기 위해 끊임없이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여야 했던 그의 삶은 그 누구보다 치열했을 것이다. 조금은 박진감 넘치게, 역동적으로 그가 하는 일들을 보여주었다면 관객이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출처: 영화 <생 로랑>

영화는 이브 생 로랑의 삶의 이면에 집중하려 한다. 그의 삶에 한 자락에는 사랑이 있었다. 생 로랑의 뮤즈였던 베티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하겠냐고. 이에 생 로랑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답한다. 하지만 생 로랑의 삶을 뒤집어 놓았던 사랑하는 쟈크와의 이별 앞에서는 그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구애하겠다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혼신을 다했던 생 로랑의 삶을 통해 그 또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출처: 영화 <생 로랑>

리고 그 한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킨 패션계의 선두주자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 있다. 자신감 없이 쭈뼛쭈뼛 서 있는 한 여성 손님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그 여자에게 정장과 남성스러운 재킷을 입혀주며 조금씩 그녀의 스타일을 찾아 옷매무새를 정돈해준다. 허리에 벨트를 매어주고, 장신구를 채운다. 꽉 채우고 있던 단추를 여유 있게 풀어주고, 정돈된 머리칼을 부스스하게 풀어준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듯해보였지만 생 로랑의 손길이 닿자 점점 그녀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마법 같은 장면이기도 했다. 생 로랑은 특히 여성들의 패션에 큰 변화를 선보였다고 한다. 폭이 넓은 바지에 남성스러운 재킷. 그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활동성 있는 여성들의 기성복 패션에 많은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는 장을 열어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진짜 자신의 색깔이 담긴 생 로랑을 만들기 위해서도 힘썼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단순히 시즌마다 새롭고 아름다운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뒤에는 브랜드의 성장을 두고 회사와의 경쟁을 해야 했고, 쉴 새 없이 내놓아야 하는 아이디어에 대한 갈망은 그의 인생을 답답하게 죄고 있었다. 아마 많은 예술가가 겪는 고충과 압박감이 이런 것이리라.

출처: 영화 <생 로랑>

그리하여 생 로랑이란 이름을 가진 이 사람은 대중이 관심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움과 기대에 부응해야만 했던 불안한 삶을 살아야 했다. 사람들은 자신 앞으로 걸어 나오는 모델들에게 걸쳐진 아름다움을 지켜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무대 뒤편에서 불안한 듯 지켜보는 생 로랑의 연약한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선망하고 갖고 싶었던 아름다움의 이면이자 뒷모습이 아니었을까.

출처: 영화 <생 로랑>

영화의 후반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며 생 로랑의 일생을 묘사한다. 아름다움을 세상에 선보이지만 그 무대 뒤에서는 심각한 우울증과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에 시달려 살아야만 했던 생 로랑. 연약하고 매 순간 무너질 듯 불안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파괴되지도 않았던 그는 죽음의 끝에서도 끊임없이 부활한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보인 당당한 미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세상의 흐름을 꿰뚫고, 세상에 변혁을 꾀했던 이브 생 로랑의 이름을 전 세계가 기억하는 것처럼 그는 이 생을 떠났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평점: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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