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이 주는 힘에 대해 가르쳐준 영화
마침내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던 순간이었다.
가까운 어느 미래를 가정하며 다루는 이 영화는 97년도 당시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테지만 오늘 날의 나는 소재 면에서는 크게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유전학적으로 원하는 우성적 특징들만을 선택하여 인공 수정이 가능하며, 출생 때부터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은, 나치시대에 우생학을 근거로 하여 한 집단을 말살시키고자 했던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가타카>에서의 세상은 전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유전학적 검사를 근거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는데 사실 남녀차별 혹은 인종 차별과 같은 문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가타카>에서 보여주는 극단적인 상황들을 통하여 과연 똑같이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그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유전적으로 기인한 특성으로 그들을 차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강렬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빈센트라는 인물을 통하여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주는 힘에 대해서 설명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디스토피아에서는 우성 인간과 열성 인간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열성 인간은 자신의 유전적 한계로 인하여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없다. 반면 우성 인간은 자신의 완벽한 유전자로 최고에 올라야 한다는 부담감을 떠안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유전적 한계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내가 꿈꾸던 것의 바로 옆에 서고 나니 비로소 얼마나 멀리 있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수영선수가 되고자 했던 제롬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되고 만다. 반면, 모두가 불가능하다 했던 항법사의 꿈을 위해 노력했던 빈센트는 자신의 예정 수명인 30세를 넘어서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잠재력이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정신력이다. 그리하여 빈센트는 우주비행이라는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넘어서지 못한다. 아이린은 늘 자신의 심장이 약하단 유전적 사실만을 늘어놓으며 가만히 있었다. 제롬은 다리를 잃고 난 뒤 상실감에 빠져 꿈을 꾸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자살할 용기도 없다고 고백할 만큼 스스로의 한계에 무너지고만 있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뒤를 보지 않았고, 자신을 한계로 내모는 세상에 굴복하지 않았기에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빈센트가 한 무모한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제롬의 이름을 빌려 항법사가 된 빈센트는 제롬에게 꿈을 준 것이 된 셈이고, 그의 여정을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본보기가 되어 용기가 되었다.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이렇듯 한 사람의 운명은 본인에게 내재된 유전학적 특성 혹은 사회적 한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제롬의 인생에서 마주한 교통사고 그리고 빈센트의 꿈을 막을 수 있었던 우주 센터 직원의 죽음처럼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내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우연들이 반증하듯 한계에 무너지지 않고, 내가 원하는 곳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면 된다.
내 안의 한계들이 우연을 예측할 수 없듯, 무한한 잠재력은 오늘도 나를 넘어선다.
평점: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