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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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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Nov 10. 2018

<스틸 컨트리>

어떠한 깨끗한 답도 내어주지 않는 이 차가운 세상을 비판하는 영화

모른 척하는 게 쉬웠던 거겠죠.
출처: 영화 <스틸 컨트리>

한 남자아이가 강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싸늘하고 고요한 마을에서 이 의문스러운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소부 도널드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경찰을 비롯한 마을 사람, 게다가 아이의 부모조차 외면하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 이 쓸쓸하고 스산한 공허에 대해서.


영화는 초반부에 왜 마을 청소부인 한 남자가 특별한 동기 없이 이 죽음에 관심을 두게 되는지에 대해 개연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난 뒤, 뚜껑을 제대로 덮지 않는 동료에게 핀잔을 주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작업 모자라는 그만의 이유로 털모자를 쓰고 일한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가 사건에 관심을 갖고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쯤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집에 무작정 들어와서 침대 밑에 있는 가지각색의 볼펜들이 담겨있는 통을 바닥에 쏟아낸다. 일종의 습관인데, 혼란스러울 때면 수십 개의 볼펜을 색깔별로 정리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부검을 하지 않은 채 묻어버린 아이의 무덤을 도로 파내어서 조사를 해달라고 사체를 트럭에 실어오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마을 경찰처럼 스스로 사건을 조사하는 어리숙한 모습이 다소 엉뚱하여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이 쯤되면 미스터리한 사건을 넘어서서 이 남자의 행동이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화는 왜 이리도 강박증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런 인물이 아니고서야 이 차가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고, 목숨 걸고 진실을 파헤치려고 처절하게 노력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반문이 아니었을까. <스틸 컨트리>는 이 사회에서 죽음보다도 차갑고 무서운 무관심으로 들어찬 이 시대를 반증하기 위하여 도널드라는 인물을 앞세웠을 것이다. 윙윙 대며 눈앞을 거슬리게 하는 파리처럼, 마음을 뒤흔드는 게 있다면 세상을 뒤흔들어서라도 해결을 봐야 할 것 아닌가.


점점 희미하게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만큼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도널드라는 자의 진짜 모습도 서서히 드러난다. 순수해 보였던 한 남자가 극한을 치닫으며 드러내는 강박증적인 면모뿐만이 아니다. 초반부, 자신의 딸을 만나기 위해서 딸의 엄마와 약속을 정해야 하는 모습으로 보아서 과거에 이 여자와 이혼했구나 라고 추측했지만 영화 후반부의 그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애초에 결혼을 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의 일방적인 구애의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화 속 도널드는 세상에 대한 반증으로서 존재하면서도, '진실'이란 게 겉보기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이치 또한 이 인물에 투영되어있다.


더 나아가 도널드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남다른 면이 있다. 명확하게 단정할 수는 없으나 걸음걸이, 말과 행동에 있어서 어린아이 같다. 마을 경찰처럼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아래로 기차가 지나가는 다리 난간에 매달리라는 위협에 손 쓸 바 없이 애처럼 당하는 도널드. 그가 사건에 집착하기 시작했을 때쯤, 라디오에서는 죽은 아이가 발견되었을 당시의 차림새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황갈색 옷과 청바지. 이상하게도 그 뉴스를 듣는 도널드 또한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바에 더하여 마지막으로, 도널드라는 인물은 하고 싶었던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관심 속에서 죽어가야 했던 한 소년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가 그토록 집착했던 건 소년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결국, 구원을 바라는 마지막 외침을 세상이 듣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출처: 영화 <스틸 컨트리>

도널드는 모든 진실을 알고, 아이를 죽음까지 내몰았던 자를 찾아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한 그의 뒤로 그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들이 다가오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는 이러한 결심을 내리기 이전에 딸의 집을 찾아갔다. 조심스레 딸의 창문을 똑똑 두드리며 상대방은 모르는 마지막 안부를 건넨다. 그리하여, 도널드는 네버랜드로 떠나기 위해 아이들의 피터팬이 되어주길 자처한 것이다.


아동 성폭행 문제를 다루면서도 일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철저한 무관심을 통렬하게 비판하고자 하는 <스틸 컨트리>는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로만 보면 올해 개봉했었던 <쓰리빌보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다만, 이 영화는 진실에 가까워지는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고 구성이 탄탄하지도 않다. 모든 것을 도널드라는 인물에 쏟아낸 것 같달까.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걸어가는 이 남자.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행동들 속에서도 진실을 향해 미친 듯이 쫓아가는 그가 도리어 세상 누구보다도 정상적인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에 다른 무엇보다 이 역설적인 인물을 잘 소화한 앤드류 스캇의 연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할 수 없듯.


맞춰지지 않은 진실의 퍼즐 조각을 훔쳐간(steal) 이 세상과의 냉혹한 싸움이었다. 그의 행보에 강철처럼(steel) 차가운 세상은 사나운 시선을 보냈지만 또, 강철처럼(steel) 단단하고 견고한 마음의 부동은 그 마지막 퍼즐을 찾아내고야 만다. 허나, 영화가 끝이 나도 맘 속엔 개운치 않은 무언가가 응어리져있다. 외로운 움직임의 끝에서, 여전히(still) 변하지 않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평점: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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