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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Feb 12. 2024

아웃백 실수 대잔치

그냥 넘기면 될 것을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실수는 실수일 뿐인데..


내가 저지른 실수는 자책으로 이어졌고 끝내 행복한 분위기를 망치고야 말았다.


최악이었다.


나는 설 연휴를 맞이하여 여자친구와 가족의 식사 자리를 잡았다.


요 근래 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는 여자친구를 혼자 두기 싫어 기획한 우리 가족의 간이 프로젝트다.


우리 가족과 여자친구는 허울 없이 카톡과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다. 여자친구의 성격이 워낙 좋아서인지 어른들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순수하고 예의 바르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은 더욱 여자친구를 챙기려 한다.


그러한 관심이 부담스럽지도 않은 여자친구이기에 가족과의 식사엔 항상 웃음꽃이 핀다.


photo by pexels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아웃백으로 향했다.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 )


도착 후 예상보다 적은 대기시간에 첫 번째 웃음꽃이 핀다.


메뉴를 주문하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멀치 감지 떨어져 입을 꾹 닫고 있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보며 두 번째 웃음꽃이 찾아온다.


메뉴가 나오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웃음이 만개한다.


photo by pexels

음식의 맛과 분위기에 행복한 우리의 감정이 더욱 고조된다.


오늘 내가 정한 일일 행복의 임계점에 다다를 때 우리의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해본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나의 실수로 인해 음식을 옮겨 담는 과정에서 음료를 다 쏟았다.


음료는 내 바지 절반을 물들였고, 식사를 하던 옆 테이블도 화들짝 놀라 우리를 쳐다봤다.


테이블 담당 서버는 재빨리 다가와 나의 식은땀을 멈추려 애쓰지만 내게 집중된 모두의 시선을 견뎌내기엔 쉽지 않다. 많은 테이블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다. 미안함, 창피함, 자책감, 후회 등 무수히 많은 부정적 감정들이 연쇄작용으로 터진다.


잘 보이고 싶고,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었던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분위기가 삭막해진다.


나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지'라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뇐다. 급격히 줄어든 나의 말수와 표정으로 인해 분위기가 다운된다.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다.


가족과 여자친구 사이의 교집합은 나뿐인데, 내가 말이 없다.


분위기를 망쳤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여자친구다.


여자친구가 그 상황에서 소방관을 자처한다.


침묵의 불을 끄기 위해 오히려 더 과장된 제스처와 함께 실수한 나를 치켜세운다.


'실수인데, 뭐 그리 다운돼 있어! 바지는 빨면 되지~ 음식 맛만 좋구먼~ 뜨거울 때 빨리 드시죠 저희!'


잠시 예민해지고 자책하여 한탄만 뱉고 있던 내게 일련의 호흡을 건넨다.


가족들은 그런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고 말과 웃음을 되찾는다.


가족들과 여자친구의 노력은 나의 평정심을 되찾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체면이 더 중요했나 보다. 


더 멋있고, 실수 없이 이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었던 자그마한 책임감이 상실되자 공허한 느낌이 내게 찾아왔나 보다.


마음이 복잡한 여자친구를 위로해주지 못할 망정 내가 그 분위기를 리드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컸나 보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너무 어른스럽지 못했다. 어른들 사이에 낀 그저 어린아이였다.


뭐가 나를 그러한 감정으로 이끌었을까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때의 내 감정을 오롯이 기억하고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위의 사건을 통해 내가 느낀 건 아래와 같다.

photo by pexels

1. 매 순간 내가 예기치 못한 상황들로 가득할 텐데 재빨리 다음 스탠스를 취하는 것의 중요성


2. 체면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수단일 뿐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에 벗어던지자


3. 무엇이던 본질(식사 자리를 기획했던 것)을 기억하자. 그 안에서 나는 어떠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무엇을 위한 자리로 임해야 하는 가를 끊임없이 되새기자


4. 상황을 침착하게 정리하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자친구의 의연함을 본받자


우리 뜻대로, 마음가짐 대로 되는 건 하나 없다.


그럴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지를 끊임없이 되뇌는 것이다.


위의 상황에선 무겁지도, 그렇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스탠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날의 실수로 잠시 동안 벙쩠던 우리 가족에게 최선을 다한 여자친구.


미안함과 감사함이 공존하며 이 말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네가 나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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