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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Jan 12. 2022

5% 라도 남기고 싶었다

by pixels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나는 누구보다 솔직하게 살아가려 노력한다. 하지만 공동체 속 모든 모습을 드러내며 살진 않는다.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나의 남은 5%를 공개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5%는 나의 진심이라기보단 부끄러운 모습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TMI들이 속해있다. 그 외 95% 모습은 정말 솔직하다.
처음엔 5%를 말하지 않고 나만 가지고 있으면 괜찮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5%가 나를 괴롭힌다. 잔존해 있는 내 모습들이 그건 네가 아니라며 속삭인다. 100%를 채우라며, 완벽해지라며 목을 조른다. 지난번 이야기했던 완벽함에 대한 생각과도 이어진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 인간다운 면모인 5%는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말이다.


나는 한국에 살고 있고, 공동체 속에서 대화를 나눠야 하고, 나를 드러내야 한다. 그렇기에 100%인 나를 보여주기는 싫은 것이다. 물론, 한국어를 통해 현인들과 고견을 나누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올라오는 5%의 욕구를 풀기가 꺼려진다. 어디선가는 마주칠 것만 같고, 어디선가 나와 나눴던 이야기들이 올라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전부 다 꺼냈을 때, 전부 다 잃을 것만 같아서 그런다. 


이 5%는 나만 알고 있다. 그렇지만 숨통이 답답하여 사고를 넓혔다. 만약 한국이 아니라면? 한국인이 아니라면? 영어라는 외국어를 통해 내 생각을 전달한다면, 나의 5%를 가감 없이 힘 빼고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조여 오는 5%의 숨통을 하루빨리 벗어던지고 차분한 호흡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외국인을 찾게 되었다.


내겐 약 3년 전부터 간간히 연락하는 외국인 친구가 있다. 그는 인도 사람이고 현재 아마존 품질 관리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와는 'Hellotalk'(각 나라의 언어를 교정하고 친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플랫폼)이라는 어플을 통해 만나게 되었고, 서로의 언어를 교정해주며 친해지게 되었다. 자기소개 밖에 할 줄 모르던 나는 이젠 몇 가지 단어들로 의견을 피력할 줄 안다. 단, 완전한 문장은 아니고 '나는 좀 전에 밥 먹었어 넌?, 나는 꿈을 향해 준비 중이야, 나는 이렇게 생각해' 등과 같은 정형적이고 쉬운 말들이다.


올해가 되어 나와 그는 가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정문제, 학업문제, 직장문제, 연애 문제, 환경문제 등 여러 가지 토픽들로 꽉 채워진다. 당연히 전부 알아듣지 못하니 다급하게 papago를 켜 내 생각을 전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외국인에게 나의 5%를 드러내는 것이 허망하기도 하면서 좀 더 자유함을 얻은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진다. 뜻은 한국어지만 열심히 번역하여 전달한 영어이기에 무언가 나의 짐을 덜은 채 솔직함에 집중할 수 있다랄까? 나아가 그는 리액션이 크고, 진심으로 들어주려 하는 친구다. 영어를 잘 모르지만, 영어에 내 남은 5%를 담으니 마치 새로운 감정의 언어가 되어 그에게 향하는 듯싶다.


나는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적극적 질문을 펼치지 못했다. 눈치보기 일쑤였고, 괜히 시간만 잡아먹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정해진 학습내용을 옹골차게 따라가기만 했다. 정 궁금하면 수업이 끝난 후 남아서 질문하곤 했다. 모든 이들 앞에서 질문하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을까? 모든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한 두 가지 정도는 감추며 살아도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낯선 이에게 오히려 나의 마음을 더 털어놓기 편하다는 사실을.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도 화상영어를 통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푼다고 한다.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다른 언어를 통해 다른 이에게 저 깊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나의 모습을 외치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마음속 5%가 외국인 친구에게 향한다. 문화도 다르지만 자신의 의견을 따뜻하게 말한다. 때론 원서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기도를 해주겠다고 말한다. 먹을 것을 보내오기도 하고, 힘내라며 갑자기 노래를 부르더니 녹음파일을 보내오기도 한다. 그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나의 진심에 화답하기라도 한 걸까. 모두 공감할 순 없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안다. 진심이 담겨있는 새로운 언어가 주는 전달력은 굉장하다는 것을.


나는 언어의 힘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이유중 하나가 나와 같은 목적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든다. 다른 언어에서 오는 힘을 이용하는 것이 꽤나 매력적이고, 수심깊은 나를 마주하고 오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도 가끔의 인사를 전해줘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앞으로 이 5%를 더욱 지키고 살아가기로 한다. 어떻게 보면 두 개의 페르소나지만 5%니까 감안이 된다. 


나의 5%를 그에게 꺼냈을 때, 비로소 내가 채워졌다.

오늘 그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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