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서 미소 짓는 부모님의 행복을 담았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자그마치 30년이 걸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제주도를 여행하는 것이.
부모님의 신혼여행 이후 정확히 30년 만이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지 30년 만이다.
그간 집 안에서의 행복으로 충분할 줄 알았다.
가정에서 온화한 미소로 부부 관계를 이어나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꼭 빼닮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행동, 다른 시도는 불필요한 줄로만 알았다. 바위처럼 단단해진 나의 고정관념을 깬 것이 바로 제주도 여행이었다.
처음 봤던 어머니의 환한 미소, 아버지의 고백, 서로 더 배려하는 아기자기한 모습들은 사로잡힌 나의 바위 같은 고정관념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때론 낯선 것들이 예기치 못한 감동을 준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었다.
우리 가족은 여행에 서툴다. 집 밖을 나가 발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들에겐 그 흔한 외식도 자주 하진 않았다. 모든 요리에 통달한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장 봐서 해 먹는 게 외식보다 싸~ 돈 아껴서 집에서 맛나게 먹자, 뭘 또 나가 귀찮게~'
어린 시절엔 근검절약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돈을 허투루 쓰지 않으시는구나, 항상 경제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것이 조금 고리타분하다 느껴졌다.
단순히 외식은 내가 해 먹을 수 있는 요리 이상으로 다른 분위기를 주곤 한다. 외식을 가기 위해 음식점을 찾아보는 것으로부터 외식은 시작된다. 장소를 정하고, 낯선 곳까지 이동하며 식당에 들어선다. 집이 아닌 다른 테이블 위를 바라보고 있는 행동들 자체가 새로운 추억을 저장하는 일인데 말이다. 새로운 추억보다 현실적인 것을 택한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마 어머니는 나의 마음을 몰랐겠지.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말들이 다 맞다 이야기하지만 이것만큼은 아닐 거야라며 내 생각의 확신을 굳혀갔다. 계속된 의문으로만 품기 전에 나는 얼른 실행에 옮겼다.
집을 나가보자. 여행이라는 새로운 추억을 선물해드리자. 밖에서 돈을 쓰는 일이 무분별한 소비가 아님을 보여드리자라며 호기롭게 마음먹은 것이 바로 제주도 여행 계획의 시작이었다. 덧붙여, 제주도 신혼여행 이후 한 번도 같이 방문해보지 않은 부모님의 추억의 연결고리가 되어드리고 싶었다.
모든 일정은 내가 계획했다. 2박 3일의 여정간 렌트, 숙소, 음식, 자연경관 등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들로 기획했다. 기획이란 것이 별거 없을 것 같지만, 일상의 모든 것은 선택과 기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워낙 까다로운 성격의 부모님이라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준비했다. 동선 낭비 없이 피곤함을 덜을 수 있도록 계획했다. 꽃 개화시기 및 날씨 확인, 숙소는 탁 트인 뷰가 있는 것인지, 답답하진 않은지, 음식점 브레이크 시간은 없는지 등 변수를 차단하려 최대한 애썼다. 작은 변수 하나가 부모님에게 답답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서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건 나의 오판이었다)
우린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말썽이었다. 분명 김포공항 국내선을 검색했는데 공사 중인 것이 반영되어있지 않아 뺑뺑 돌게 되었다. 다행히 여유롭게 탑승 시간을 두고 출발했던 터라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내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깨달았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석적으로 짠 나의 계획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계획의 조각이 파편 될수록 중요한 것은 유연한 생각이라는 것과 당황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도착한 제주의 봄은 더할 나위 없이 맑았다. 도착한 우리에게 하늘은 인사를 건넸다. 부디 편하게 머물다 가라며 따뜻한 말로 우리 가족을 덮어주었다. 제주도의 이곳저곳을 들리며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다. 부모님이 저렇게도 웃으실 수가 있구나.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 조금 더 일찍 데려올 걸....
후회는 접어두고 현재에 집중했다. 여행 내내 부모님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해변가 암초 위를 돌아다니며 사진이 잘 찍힐 것 같은 공간을 찾아 나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웃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저랬을까? 그런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도 나와 같았을까?라는 생각을 반복하며 나는 미소의 셔터를 눌렀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꽉 껴안는다. 집에서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모습이다. 근엄한 모습, 프로페셔널한 모습, 무게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랑하는 여자 앞에 순수해져 가는 모습이 되려 나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여행은 이렇게 내 모든 걸 내려놓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구나.
여행 내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한다.
'당신 좋아~?'
어머니는 대답한다.
'좋다 구우~'
짧지만 강한 두 명의 대화다. 내 기분을 좋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지라도 누가 표현하느냐에 따라 또 다름을 느끼게 된다. 표현엔 수려한 말이 중요하기보다, 진심을 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나는 지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삼일 내내 운전하며 모든 곳을 인도한 나는 부모님의 가이드가 되기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나의 노력으로 인해 누군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나의 가치관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여행은 찬란했다. 투명한 에메랄드 빛 제주 바다만큼이나 빛났다. 자연 속을 오롯이 누리는 부모님이 있었기에 빛은 더욱 선명해져 갔다. 순수한 마음들로 채워나간 부모님의 시선과 행동은 그것을 기록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으로 가닿았다. 아름다움 속에서 본질을 발견했다.
30년이나 걸렸지만, 그때의 기억만큼이나 빛났다고 말해준 부모님 덕에 나는 그것으로 족했다.
여행은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하며 누군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관계를 회복하기도 하며 결속력을 다지기도 한다. 오랜 기다림은 그 여행을 기대하게 만든다.
들뜬 마음을 가지고 온 여행에 실망이 클 수 있지만, 그 실망을 상쇄시킬 수 있는 건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실망스럽다 느끼는 것은 마음가짐으로 부터 비롯된다. 내 욕심이 크기에, 내가 여행으로부터 얻으려는 것이 크기에 실망은 생겨난다.
애써 다 누리려고 하는 여행은
모든 것을 잃은 채 돌아오게 만든다.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도 감사요,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것도 감사다.
불평 속에 피어나는 긍정과 희망의 마음이 깃드는 것도 감사요, 안전히 집으로 귀가할 수 있음도 감사다.
부모님의 미소를 볼 수 있음에 감사요, 그것으로부터 오는 나의 행복도 감사다.
우리 가족에게 여행이라는 일탈은 배움과 감사의 시간이자,
부모님의 행복을 더 또렷하고 가까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30년 전을 회상했고, 현재를 누리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모든 시점의 집합체였다.
30년이나 걸렸지만, 30년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30년 이상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우리의 찬란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