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영철에게 메일을 보낼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한다. 과연 맞을까? 혹은 그에게 부담일까?
귀찮게 만드는 건 아닐까? 감정은 상하지 않을까? 나는 이내 열심히 적어둔 타이핑을 다시 내려놓기로 한다. 어느날 나의 오전이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성이다. 작은 것 하나도 거를 수 없다.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살자 다짐해봐도 머릿속은 선택을 끌고 와 우리를 괴롭힌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걸 살까? 혹은 사지 말까?
일상의 잔여물들을 처리하기도 바쁜데, 선택의 괴롭힘은 우릴 더욱 힘들게 한다. 아니 지치게 만든다.
때론, 하나를 놓고 고민하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데 작은 것 하나 지조 있게 결정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자책은 내 마음을 매섭게 파고든다.
선택은 왜 힘든 것일까? 나의 경우엔 불안한 심리가 은연중에 나를 흔드는 듯싶다. 혹은 내가 내린 결정을 타인이 싫어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지래 겁을 먹는다. 즉, 내가 내린 선택에 확신이 없는 것이다. 지나치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헤아리려 했던 마음들이 되려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저 나의 마음, 소신, 선택을 확실히 펼치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내가 내린 선택은 내가 책임지면 된다. 설령 상대방이 불쾌하게 받아들였으면 나의 선택의 오류로 데이터를 쌓아나가면 된다. 이것은 인생에서 멈추지 않을 오랜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은 스스로 가꿔나가야 한다.
사실, 어느 누구도 나의 선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나이를 먹고 얼마 되지 않아서이다. 내가 내린 선택을 책임지는 일이 쉬울 줄 알았지만, 나에겐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갖가지 수를 생각해보며 확신을 쌓아나가려 했지만 이내 내 발목을 조여왔다. 지나친 타인 의식은 나를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보게 만들었고, 좋지 않은 쪽으로 몰았다. 줏대 없다는 소리 듣기를 수십 번. 꽤나 큰 단점이자 고통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내 선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나의 결정에 있어선 나만 책임지면 된다. 물론, 철저히 나의 개인적인 결정에서 말이다. 사회에서는 분명 다르다. 나의 행동 하나가 모두를 힘들게 할 수 있기에 철저한 고민과 여러 가지 갈래들로부터의 결정이 필요하다. 허나 적어도 나의 결정 앞에선 내가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 확신 없는 나의 선택은 오해를 불러오고, 심할 경우 자기 비하를 불러온다. 올바르지 않은 선택에 지나치게 매몰되다 보면 나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책임의식과 자기 확신이 중요한 이유다.
한번 더 말하자면, 내가 선택하고 결정 내린 것은 내가 책임지면 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에 내 마음만 단단히 바로 서 있으면 된다. 나는 그게 어려웠다. 그게 괴로웠다. 그래서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던 듯싶다. 퍽하면 의문사를 붙이며 나의 선택에 반문을 제기했다. 반문에 뒤집어진 선택은 갈피를 잃었고 선택 그 자체로서의 힘마저 잃었다. 이를 좋게 봐주는 이들은 확실한 선택을 내리기 위해 철저한 과정을 거친다며 포장하지만, 나를 객관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비효율적인 프로세스였다.
그래서 나는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당당하고 온전히 선택을 맞이하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성스레 적어 내려가는 활자들 앞에 괜스레 숙연해졌다. 온전히 내가 다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은 하지만 내린 선택에 주저 없이 써 내려가는 나를 볼 때면 누가 어떻게 생각하건 눈치 볼 필요 없이 나의 활자를 내가 책임지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이야기, 나의 마음, 감정, 상태, 상황 등을 솔직하게 선택해 써 내려가는 것이 곧 자아이자 나의 글쓰기였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일, 누군가의 선한 일을 드러내는 것을 선택한 나는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있다. 나의 글이고, 나의 시선이고, 나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반문이 제기되어도, 옳지 않은 시선으로 나의 글을 바라봐도 내가 내린 선택이고 활자 앞에 나는 솔직했기에 부끄럼이 없다.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글을 쓰다 보니 깨닫는다. 선택에 앞서 물어볼 건 두 가지라는 것.
첫째, 나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한 결정인지
둘째, 부끄럼 없이 자기 확신이 있는지
앞으로도 선택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를 따라올 것이다.
과거엔 마음의 짐 같은 그림자였다면, 이젠 나의 옆을 동행해주는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줄 것만도 같다.
주저 없이 선택해도 된다. 아니, 주저해도 된다.
그 선택 앞에서 내가 솔직했는지, 선택의 끝에 자기 확신이 있었는지
나는 이 두 물음에 답하며 길을 걸어가면 된다.
더 솔직한 나를 동행자 삼아 곁에 두고 싶다. 이젠 선택이 그리 힘들지 않을 것만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