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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Mar 25. 2022

6년, 새로운 다짐과 이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 그 친구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정확히 6년 6개월 만에 휴대폰을 교체했다. 군 제대 후 처음 샀던 스마트폰을 지금까지 쓴 것이다. 지독하게도 오래 썼다. 유독 나의 휴대폰 바닥이 지진을 일으키고 있다. 갈라진 액정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든다. 위험하다. 물이 들어가자 화면은 춤을 춘다. 춤을 추는 화면을 따라가기 힘들다.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전화받는 것과 메시지 보내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쓸데없는 나의 고집이었다.


첫 휴대폰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영롱한 금빛 테두리와 부드러운 터치 스크린은 나를 매료시켰다. 복학생이 되어 학교를 누빌 때 항상 나의 오른손엔 책이 아닌 휴대폰이 함께 했다. 일상을 기록하고, 정보를 축적하고, 외로울 땐 음악에 귀를 맡기고, 아름다운 일몰을 다시 보고 싶을 땐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행복했다.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저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휴대폰은 나의 분신과도 같았다.


6년이 지났다. 나와 함께 일과를 보냈던 나의 휴대폰은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제 풀에 지쳤는지 6개월 전부터 호흡이 가빠졌다. 휴대폰의 호흡은 무엇일까. 아마 배터리이지 않을까. 힘들다며 빠르게 방전되어 가는 배터리의 손짓을 보았다. 손을 잡아주어도 온전히 서있을 수 조차 없는 휴대폰이었다. 숨이 막혀 이제는 나도 너를 위해 버텨주기 어렵다며 말하는 듯싶었다. 나는 그간 고생한 휴대폰을 내려놓아주자 다짐했다.


휴대폰은 도구다. 물체다. 그저 하나의 기기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면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 사람을 풍요롭게도, 안타깝게도, 힘들게도 만드는 제3의 인물인 것이다. 신기하게 휴대폰에 감정이 이입되었다. 그저 하나의 도구라 생각했으면 이런 감정이 들지 않았을 터, 허나 나의 첫 스마트폰이었고, 중요한 순간 나의 곁에 생각을 머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의 분신이자 친구였다. 숨기고 싶은 나의 감정을 다른 이에게 전달해주는 역할도 해주었다. 때론, 울고 싶어 노래를 틀어주는 친구였다.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고의 위로였다.


그런데 그런 휴대폰이 힘들다며 손사래를 친다. 이 친구에게 너무 가혹하게 군건 아닌지, 나의 아집 때문에 편히 쉴 곳을 두지 않으려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처음엔 이 친구가 해주는 모든 것들에 감사했다가, 이 친구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니 불평만 늘어놓게 된다. 사이트 하나를 여는데 몇십 초가 걸리고, 어플을 실행하는 데 1분 이상의 로딩이 걸린다. 이 친구의 입장에선 힘을 쥐어짜 내고 있는 것일 텐데 말이다.

누군가의 피나는 노력을 나의 편의를 위해 무시한 건 아닌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기적인 나를 탈바꿈해야 한다는 다짐도 한다.


그래서 놓아주기로 했다. 그동안 충분했으니, 감사했으니, 별 탈 없이 옆에서 나의 변명, 불평을 다 받아주는 친구였으니. 고마웠다. 힘들다고 튕겨 나가지 않고, 깨어져도 그 모습으로나마 나를 위해 힘써준 이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추억 속의 친구로 이 아이를 기억하기로 다짐하고 새로운 친구를 맞이했다.


새로운 친구는 액정과 외관 모두 깨끗하다. 근데 어딘가 낯설다. 분명 기분이 엄청 좋을 줄 알았는데, 한편으로 아쉽다. 분명, 속도는 빨라졌는데 이 친구와 교류하는 시간은 더뎌졌다. 편리성은 증가했는데, 다 삭제된 어플과 텅 빈 공간은 내게 다시금 예전 친구가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간 나를 위해 힘써준 이전 친구에 대한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한편에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그 친구도 원했을 것이다. 그래도 긴 시간 나와 함께해줘서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 친구도 이젠 나를 쉽게 놓아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친구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나는 새 친구를 맞이하기로 결심한다. 30대의 시작을 함께해 줄 아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반갑다."

반가움도 잠시 새 친구에게 전할 말이 있다.


"나는 결코 이제 네게 더 매달리지 않을 거야.

휴대폰과 모든 순간을 함께 하다 보면,

주변이 흐려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


6년간 나를 위해 힘써준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내게 이러더라.


"이젠 나 보다 주변을 더 신경 쓰는 사람이 되어줘"


그걸 왜 늦게 깨달았는지. 매몰되어 가는 나를 다시 일으켜 줄 건, 휴대폰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는 걸.

새로운 친구야. 실망하지 마. 상처받지 마.

그래도 너는 너로서 온전한 존재거든.

주변 사람에 치여 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때

또다시 너를 찾을게.


그것으로도 내겐 충분한 가치가 있는 너란 걸 알아줬음 해.


나의 새로운 다짐이자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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