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듀군 Jun 25. 2022

주유소에서 울려 퍼진 우리들의 라디오

photo by pexels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주유소에서 만났던 어르신과의 짧은 경험은 귀갓길의 대화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빗소리가 모든 경적을 삼킬 만큼 당찼던 어느 날 밤, 나는 지인의 차를 타고 지인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뭐가 그리 슬픈지, 뭐가 그리 억울한지, 일말의 쉼도 없이 내리는 비를 이해해보려 했으나 자연이 주신 선물이기에 나는 비의 절규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귀갓길로 향하던 중 차에 주유가 필요했다. 자주 가던 곳이 있었지만 집 앞에 새로 생긴 곳을 방문해보자 결심했으며 우린 그렇게, 자연스럽게 주유소에 방문했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일까 앞도 잘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방문한 주유소였던지라 이곳이 셀프인지, 일반 주유소인지 분별을 못했다. 하지만, 주유기 옆에 서계신 어르신을 보고 이곳은 일반 주유소임을 확신했다.


지인은 아주 당찬 목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세요! 기름 5만 원 넣어주세요!"


그러자 주유기 옆을 맴돌고 계시던 어르신이 대답했다.

"에이~ 아무리 예뻐도 주유는 셀프여~순간 내가 주유해드릴 뻔했네~"


지인은 당황함과 웃음 섞인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차 싶었을 것이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잠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지인은 차에서 내렸다.


끝이 아니었다. 어르신은 마감 준비를 하고 계셨다고 설명해주셨다. 더불어, 갑자기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주유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기름이 뭔지 알아유?"


"아이 러브 유~"


처음엔 거센 빗소리에 휩쓸려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이 무슨 드립인가 말이다. 하지만, 이내 나의 마음은 웃음으로 옮겨갔다. 적어도 주유소에서 들어본 말들 중 처음이었음은 분명했다.

당황함도 잠시 지인과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유쾌한 웃음으로 질문에 화답했다.

마감을 준비하고 계셨던 어르신의 행복함, 인자하신 미소와 함께 건네는 부드러운 말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부정적이었던 마음이 즐거움으로 변하기까지 단 5초.

우리는 뒤늦게 웃음을 터뜨렸고, 어르신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하셨다.


지인은 대화를 이어갔다.


"어머, 뭐예요! 여기 나중에 또 와야겠네~"


어르신은 대답했다.


"아가씨 미모는 안 변하겠지만 그래도 다음 주유도 셀프여~ 참고해유"


우린 어느새 마감의 행복을 같이 누리고 있었다랄까. 

짧았던 3분의 만남은 귀갓길의 대화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서로 이번 한 주간 고된 삶을 살았음을 고백했지만, 그 삶 속 사소한 말 하나가 우리의 삶을 치유해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것을 잊은 채 순간에 몰두할 수 있었다. 온전히 몰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다시 느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린다. '찻잔 속 폭풍'이라 했던가.

아무리 거세게 내리는 비도 그 순간의 대화를 삼킬 만큼 거세지 않았다.

어느새 우린 우리에게 사소함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어르신에게 감사를 외치고 있었다.


우리의 일과는 생각보다 간단함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느꼈다.

아무리 복잡하고 얽혀있다 생각할 지라도 사소함이 주는 힘 앞에선 온전히 자유로워지며 간단해진다.


삶이란 건 거창한 게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의 여유를 확장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던진 행복의 주파수를 당황함으로 짓누르면 라디오는 고장 나기 마련이다.

사소함이 용인되기 위해선 내 마음의 여유가 확장되어야 함을 느낀다.

고된 삶 속 뾰족한 모서리처럼 예민해지기보다, 둥글 몽글한 여유를 품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르신과 우리들의 행복 주파수가 맞춰지자 우리의 라디오는 아름다운 소리가 되어 비를 삼켰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당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