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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Jun 10. 2023

백화점은 물건을 사는 곳이 결코 아니다?

다시 또 이야기를 찾으러 나선다

photo by pexels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서른이 넘은 내 인생, 백화점 오픈 대기줄을 처음 서보며 느꼈던 나의 감정은 복잡 미묘 그 자체였다.


나는 모처럼 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속에 나를 가두고 글을 쓰기 위해 무작정 가방 안에 태블릿을 챙겨 집을 나왔다. 그런데 백화점 오픈 시간을 오전 10시로 착각하여 다소 일찍 도착하게 되었고 매장 앞 대기 중인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앞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대화를 나누며 백화점 입장을 대기하고 있었다.


그곳엔 대다수의 30-40대 여성 분들이 많았고 삼삼오오 모여 가정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싶었다. 그들의 대화를 디테일하게 듣고 싶은 의도는 없었으나 적막을 깨는 소리의 파동은 나의 두 귀가 반응하기에 충분했다.


사소한 이야기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찰나에 나는 마치 맛집 오픈 웨이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별다를 것 없이 1분.. 5분.. 10분.. 시간이 흘러갔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들었던 생각은 맛집 웨이팅과 달리 백화점은 거대한 공간에 체류하여 자유로운 환경에 노출될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 살 수 있는 것,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한 선택권의 폭과 기회가 유연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점을 던졌다. 부정적인 시각은 아니었다. 나도 지금 오픈 시간을 착각하여 의도치 않게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 다만, 나와 같은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수 십 명을 보며 드는 위의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기다림에 무료함을 느끼던 찰나에 찾아온 사고의 확장은 꽤나 재밌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생각의 기회를 붙잡고자 다시 한번 곱씹었다.


유독 여성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간에 30-40대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무엇을 위해 먼저 기다리고 있을까?


이내 들었던 생각에 스스로의 답을 내리기 시작했다.


첫째, 단언할 순 없지만 유독 여성이 많은 이유는 육아 후 혹은 유치원 등교를 마친 후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곳이 백화점일 수 있겠다는 것 / 집 앞 카페도 좋지만 더 큰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을 포함한 백화점 내 카페에 앉아 스스럼없이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거나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 통계학적으로 구매과정에 있어 단순한 결정을 내리는 남자들과는 반대로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그 선택지를 즐기고 여러 사고 과정을 거쳐 구매한 물건들에 대해 가치를 느끼고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은 여성들일 것


둘째, 하루로 연령대를 포괄하여 추측하기엔 다소 억지가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30-40대가 많았던 이유는 오후나 저녁보다는 오전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여유로웠을 것 / 오전에 일을 마치거나, 육아를 마치고 남은 시간을 활용하여 약속을 잡을 수 있을 것 / 결혼 이후 고증과 애환들을 마주할 수도 있는 시기일 것


셋째, 그들은 무엇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을까?

이 부분은 입장과 동시에 정답을 알 수 있기에 오픈 시간만을 기다렸다. 오픈 이후 사람들이 빠른 발걸음으로 특정 매장에 방문하여 물건을 구매할 것이라는 나의 오판에 돌을 던지듯 그분들은 문이 열리자 맞이해 주는 직원의 환한 미소에 미소로 응답하여 분위기를 즐기고 있어 보였다. 그 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하여 자리에 앉거나 테이크아웃 이후 백화점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서두르지 않았으며 평온을 유지했다. 쾌적하고 환한 조명 아래 입장과 동시에 천천히 시간을 즐기는 듯했다.


내가 백화점에 도착했던 시간은 10시 15분이었고 그 이전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특정 브랜드의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아닌,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도 아닌, 그저 그 상황과 환경을 마주하고 여유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한편으론 고정관념이 깨지는 계기였다.


백화점이라는 곳은 무언가를 구매하기 위해서만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


가치와 행복을 투영하여 자유로움 속에서 헤엄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 점.


되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의 결정이 어려울 수 있으나 선택지가 가져다주는 것은 소유에 대한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 안에서 항해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점.


오픈 전 문이 닫혀있던, 제약되어 있던 부분에서 해방되어 환영과 대접을 받고 그 공간을 소유할 수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점 등 나는 다양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백화점은 물건을 구매하고 구매한 물건을 통해 행복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곳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외에도 백화점은 관계를 형성해 주는 장소 / 현실의 자아와 잠시 동떨어져 이야기를 통해 솔직한 자아를 마주할 수 있는 장소 / 다양한 선택지가 나의 복잡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장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때론 백화점(百貨店)은 사람들만의 솔직한 이야기와 선택의 말들로 가득한 백화점(百話店)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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