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기억할 수 있는 건, 그들 때문이란 걸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6명의 일본 꼬마 아이들이 건네준 무해한 웃음과 길 안내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문득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상상을 수 차례 해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다녀온 이후 그곳의 풍경, 음식, 장소들을 떠올린다. 친한 사람들과 여행과 관련된 추억 보따리를 이따금 풀 때면, 음식과 풍경, 장소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당 주제의 대화들은 즐거운 시간을 채우기 위한 아주 좋은 소스들이 된다. 정겨움 속에 섞여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노라면 다시 그곳을 가고 싶은 마음과 잠시나마 그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기 마련이다.
물론 풍경, 음식, 장소 등이 아름답고 전체적인 그 나라의 분위기를 기억하게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나의 사고방식을 두드린 것들과 친절함이 그것을 뒤엎기도 한다.
2018년 6월, 나는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의 오사카를 방문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기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비교적 가까운 나라인 일본을 선택했고,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도 모른 채 무작정 티켓을 끊고 향했다.
도착 이후 모든 것들이 생소했다. 심지어는 발걸음마저도 달리 움직이게 되었다. 마치 뚝딱이 마냥 말이다.
그래도 최근엔 여러 가지 기술이 발전되고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어 소통에는 문제가 없겠지 다짐했고 조금의 두려움은 사라진 채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력은 우리의 모든 감정과 서사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구글 지도를 통해 특정 목적지에 방문하고자 했던 나는 이상함을 감지하게 되었다. 20분 동안 계속 같은 장소를 뺑뺑 돌고 있었다. 하필 날씨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 반팔 티셔츠는 어느덧 땀으로 적셔지고 있었다.
도무지 어떻게 그곳을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불쾌함과 짜증이 섞인 바로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저기 있는 6명의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볼까..? /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길을 알까..? / 괜히 길을 물어봤다가 알 수 없는 말들을 나열하며 나의 시간이 뺏기지 않을까..?
처음으로 말을 건네는 것이 두려웠지만 짧은 시간에 선택을 위한 고민을 하고, 그래도 물어보는 것이 결과를 위한 높은 확률임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길을 물어봤다.
내 예상은 당차게 빗나갔고, 나는 얼굴과 귀가 새 빨게 진 체 멈춰있었다.
아이들은 나의 번역을 보고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왁자지껄 토론을 하는 것만도 같았지만 토론이라기엔 아이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 좋은 방향으로 그리고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복한 결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무리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손짓과 함께 신호를 보냈다. 말은 몰랐지만 누가 봐도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한편으론 아이들에게 물어본 것이 안심이 되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지역에서 어른을 따라가기엔 어른인 나도 무서울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안심에 나는 곧장 아이들을 따라갔다.
더 웃긴 사실은 나는 저 먼치 놔두고 자기들끼리 앞서 나갔다. 그러곤 중간중간 다시 오라며 손짓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10분이 넘도록 아이들은 나를 이끌고 목적지까지 인도했다. 뭐라 말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이동하면서 다른 것들을 구경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나도 아이가 되어 아이들을 따라가는 것만 같았다. 분명 문화와 생김새와 나이도 다르지만 그 시간과 순간만큼은 그들과 하나 되어 유년시절의 향수가 코끝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행복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쓰며, 행복하게, 그것도 웃음과 함께 꽤나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날 나의 온몸은 땀으로 젖었으나 알 수 없는 시원함과 행복함이 그것을 대신했다.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른 것 같아 보였다. 아이들은 여기라며 손짓을 건넸고 하나같이 모두 그들만의 임무를 완수한 것 같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한 손에 주먹을 쥐며 힘차게 하늘로 뻗었다.
나도 절로 미소가 나왔고 연신 감사함을 건넸다.
감히 상상할 수 없었고, 겪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내 인생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길 안내를 해본 적도 없었고, 더군다나 무더운 날씨 속 끓임 없는 미소와 행복한 표정으로 일관된 적도 없었다.
내 고개는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숙여졌고 뭐라도 대접하기 위해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아 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감사의 표현과 이것밖에 없었다. 더 큰 감사함으로 그들에게 내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얼굴에 비쳤던 행복함과 만족함의 표정은 마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해한, 그리고 순수함의 결정체로 보였다.
나는 그들을 통해 배웠다.
언어와 문화, 장소, 풍경은 기억할 수 없어도 그들이 준 선행과 따스함, 친절함 그리고 잊고 있었던 순수함은 일본이라는 도시를 기억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은 내게 여행의 본질을 선물했다.
맛있는 것과 좋고 멋진 곳의 기억으로도 충분히 여행의 만족을 느낄 수 있지만, 그곳을 오롯이 기억할 수 있고 다시금 생각나게 만드는 것, 더 나아가 그 기억이 삶을 살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곧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아이들은 나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내 머릿속의 보금자리를 펼쳐 주었고 고스란히 간직될 수 있도록 그것을 보듬어주었다. 보듬어진 기억은 세상 밖으로 나와 이렇게 글을 쓰게 하였고 글을 통해 아이들의 순수한 선행과 도움이 또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초석이 되길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
그때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길 안내가 당연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기억의 조각을 꺼내 움직이고 살아가게 만든다.
당연한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얻는 또 다른 동력, 아이들을 통해 느낀 순수함과 선행을 나눌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는 것.
아이들은 내게 없는 것을 채워준 선물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