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를 베풀 때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는 것도 나쁜 태도이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호의를 베풀지 않는 것도 나쁜 태도이지만, 호의를 베풀 때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는 것도 나쁜 태도이다.'
감사노트 맨 위에 적힌 문구다. 나는 올해 6월부터 매일 감사노트를 작성하고 있다. 부정적인 습관과 생각은 던져버리고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를 표하기 위함이다. 아직도 낯설다. 이 말인즉슨 일상생활에서의 감사가 체득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노트를 작성하며 느끼는 것은 감사할 거리를 찾아 쓰는 것보다 삶에서의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부정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완전체는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일시적인 감사의 삶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즉, 감사의 글자는 글자 자체로 의미가 없다. 삶에서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노트이자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그래서 감사의 삶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위의 문구가 그 노력을 말해준다. 우리에겐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의 호의를 감사함으로 받는 노력과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같은 행동이 어려운 이유는 무얼까? 호의를 지나친 관심이라 느끼거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아닐까? 혹은 감사함을 표현할 여유조차 없는 것일 수도.
적막한 사회다. 자기주장이 더욱 확고해진 시대, 타인에 대한 관심의 부재와 자기 자신의 삶을 치열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던진 호의는 되려 따가운 눈초리가 되어 돌아온다. 호의는 상대방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결정체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당연시함이 앞선다면 이 사회가 순환될 수 없다. 감사함을 바라고 감사의 행동을 억지로 할 필요도 없다. 그저 호의를 자기만족으로 생각하여 전해도 좋겠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쓴 아픔이 되어 돌아온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길을 몰어본 이에게 길을 안내해 주면 침묵과 함께 뒤돌아서 간다.'
'떨어진 물건을 주어주면 이걸 왜 당신이 가지고 있냐며 따진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는 이의 어깨를 잡아주면 뭐 하는 거냐며 손을 떼라 말한다.'
최근 나의 경험들이다. 세 명의 사람이 모든 이를 대변할 순 없지만 '호의를 베풀 때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님이 분명하다. 호의를 베풀지 않을 순 있다. 삶을 살아가기 벅찬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상대방이 베푼 호의에 반감으로 답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어떨까.
세상에게 살포시 바라본다.
호의를 무시할 순 있다. 베푼 것 만으로 스스로에게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베푼 호의에 돌을 던지는 행위는 근절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마다는 세상에서 귀한 존재들이며, 서로가 귀한 존재로 존중해 줄 때 비로소 어둠 가운데 빛이 든다. 그 빛은 또 다른 세상을 살린다.
감사할 줄 아는 삶. 삶으로 살아내려는 삶. 그것은 어떠한 행동보다도 값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