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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Jul 15. 2023

수다쟁이 고깃집 사장님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서비스

photo by unsplash

거센 비. 노동. 허기짐. 모든 것이 나를 뒤덮는다. 배꼽시계는 수십 분간 알람을 울려댄다. 무시의 방법이 통하지 않던 찰나에 친구와의 선택으로 방문한 고깃집에서 예기치 못한 친절과 맛을 경험한다. 스몰토크와 미소가 끊이지 않는 수다쟁이 사장님. 앞으론 여기다.


친구의 이삿집을 방문한다. 너저분한 빨래. 에어컨 설치기사님. 정리되지 않은 거치대 재료들. 마치 건축물이 완성되기 전 기초공사 현장을 보는 것 같다. 정리가 되었으리라 생각하고 방문한 곳은 여전히 진도를 나가는 중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밥 한 끼 하러 온 나는 예기치 못한 고급 인력이 된다. 가장 친한 친구의 부탁이기에.


부랴부랴 움직인다. 소매를 걷고. 양말을 벗고. 하필, 에어컨도 고장 났다. 그렇게 수리 기사님까지 총 세 명이 한 집에 있다.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적막함이 흐른다. 10분이 지났을 즈음 기사님이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신다. 안도감을 내쉬며 친구들만이 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서막이다.


모든 정리를 마친다. 전과 후가 비교될 정도로 달라졌다. 친구는 내게 감사를 표하고, 나는 이왕 한 거 더 정리할 것이 없냐 묻는다.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하고 우리는 밥을 먹으러 동네로 향한다. 친구도 이 동네가 처음이다. 카테고리만 정했기에 우리는 주변 고깃집을 둘러본다. 간판이 예뻐 보이는 고깃집을 선택했으나 친구가 망설인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다. 꽤나 단순한 이유로 우리는 바로 옆집을 선택한다. 옆집의 승리다.


딸랑딸랑. 문을 열고 입장한다. 예감이 좋다. 선택의 결과가 벌써부터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사장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니신 채 시원한 데로 우리를 안내한다. 주문은 천천히 해도 되니 뒤에 있는 메뉴판을 정독한다. 옆집과는 다르게 흑돼지다. 가격은 180g에 19,000원이다. 꽤나 높은 가격에 다소 망설여지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삼겹살 2인분에 물냉면, 비빔냉면 하나를 주문한다.


밑반찬이 세팅된다. 깻잎, 부추, 김치, 소스, 계란찜, 된장찌개, 냉이나물, 콩나물, 마늘, 기름장, 장아찌... 글을 적는데도 끝이 없다. 가격에 대한 편견은 반찬을 보자마자 사라지고 없다. 임금님 수라상이다. 이후 고기가 초벌 되어 나온다. 사장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주시며 이것저것 확인하신다. 영롱한 자태다.


진짜 너무 맛있게 먹느라 사진을 담지 못한 부분, 사진을 부득이하게 퍼온 부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

별다를 것 없이 고기맛을 음미하며 우리의 대화의 집중한다. 아!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우리의 관계는 친한 친구이자 내 여자친구의 친오빠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우린 주변을 아랑곳 않고 허심탄회하게 회포를 푼다.


이때부터다. 내가 이 주제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


즐겁게 식사를 하던 도중 사장님은 우리 테이블로 와 맬젓 소스는 잘 찍어서 먹고 있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물어보신다. 질문에 인자한 미소가 더해지니 친근함으로 변모된다. 낯선 느낌의 경계막은 허물어진 체 사장님과 우리는 동화된다. 사장님의 빌드업이다.


중요한 건, 또다시 우리 테이블로 와 반찬이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보신다. 분명 이 시간에 다른 테이블도 제법 있는데 재차 방문한 것이 의아해진다. 속으로 '친절한 사장님이네~'라고 생각한 체 식사를 한다. 식사 중 자주 테이블을 방문하는 것이 대화의 흐름을 깰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하다. 나는 그 순간부터 시간을 재기 시작한다. 설마 아니겠지 라며..


맞다. 사장님은 거의 정확히 10분 간격으로 식사 중인 테이블 컨디션을 체크하시며 스몰토크를 하신다. 괜스레 에어컨 온도 주제부터 시작하여 반찬리필, 고기 굽기, 맛있게 먹는 법, 청년 둘이 보기 좋아 보이셨는지 방그레 웃는 미소 등등. 처음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오는 사장님이셨기에 반감도 들었지만, 표정과 말투에 품격이 묻어 나오심을 인지하자 가치관이 변한다. 참견이 아닌 진심 어린 관심과 서비스라는 사실을.


사장님이 이겼다. 나는 경계심을 풀고 사장님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옆에 있던 친구도 하나의 무리가 되어 사장님과 함께 웃는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사장님의 열정. 분 단위도 놓치지 않으며 식사의 만족도를 물어보시는 관심. 인자한 미소와 품격 있는 말투로 사람을 홀리게 하는 언어의 마술사.


요 근래 보기 드문 서비스와 사장님이다. 


혹자는 밥 먹는 데는 개도 안 건드린다며 지나친 참견(?)에 반감을 표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조금 구석진 동네일수록 정나미 풀풀 나는 한 상이 좋다. 더불어 살아가는 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마철이라 사람도 많지 않아 도란도란 삶을 나누는 장터로써 고깃집을 대해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다.


식사를 마친다. 사장님은 우리가 일어나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않으신다. 우리는 카운터로 향한다. 사장님은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불편한 건 없었는지, 이 동네 주민인지, 가게를 이전한 이야기 등등 종점까지 열차를 운행하실 기세다.


친구는 며칠 전 이 동네로 이사 왔음을 알린다. 사장님의 촉이 좋았던 걸까. 그저 '동네 주민'을 '단골'로 직업 변경 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장님의 촉 말이다. 사장님의 정성 어린 진심과 노력에 우리는 또 오겠다며 다음을 기약한다. 사장님께 너무 친절하시다는 말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흔한 이야기다. 다만, 흔함에 잦은 테이블 방문 두 수 푼을 곁들인.


한적한 동네일수록 정나미 교류가 활발해야 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우리는 돈을 소비하지만, 소비한 만큼 사장님의 시간과 서비스를 얻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소비한 시간 이상만큼의 값어치를 얻는 것이 곧 더 큰 만족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내가 5만 원을 소비했던, 10만 원을 소비했던, 맛이 기본적으로 좋다면 재방문을 만드는 건 결국 서비스와 분위기다.


이 집은 사장님의 이름을 걸고 낸 간판인 만큼 당당했다. 우린 자신감 넘치시는 사장님의 고기 사랑을 여실히 느꼈다.


문을 나서며 네이버 지도 앱을 켠다. 나는 이곳을 '수다쟁이 사장님이 있는 고깃집 가게'로 명명한다. 키워드까지 추가했으니 명백한 사장님의 승리가 아니겠는가.


승리한 사장님께는 박수를, 우리는 다시 또 방문한다는 약속을.


거센 비. 노동. 허기짐은 고기를 사랑하고 고기에 진심인 사장님의 서비스와 함께 씻겨 내려간다.


수다쟁이 고깃집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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