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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Jan 25. 2022

머리 자르러 갔다가 고개 숙인 사연

by pexels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서비스


나는 내 머리를 자른 뒤 변화에 덜 민감하다. 파마는 가끔 하고 커트를 주로 한다. 내 머리가 짧아진 건 알겠으나 디테일의 차이는 모른다. 20대 초반까지는 저렴한 가격이 곧 미용실 선택의 기준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고 지금의 여자 친구를 만나며 관리(?)를 시작한 듯싶다. 여전히 잘 모르지만, 눈썹을 약간 덮는 앞머리 길이와 옆머리 9mm 정도의 요구는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혼자만의 확신에 가득 찬 어투로 디자이너 선생님께 말을 건넬 땐, 꼭 프로젝트 하나를 성공한 것처럼 기쁘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나의 요구사항대로 잘해주시는 미용실을 선택했다. 첫 미용실은 50대 원장님이셨다. 글이 좀 길어질 것 같으니 짧게 줄여보자면, 동네 근처여서 선택했고 생각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단, 지나친 관상을 얘기하시고 나의 성격적 단점을 비수로 꽂으셨다. 정신을 못 차린 채 나는 미용실을 이탈했다.

두 번째는 한 블록 건너 맞은편 미용실이었다. 사람 쉽게 못 고친다더니 그 당시 집 근처만 선호했나 보다. 그 미용실은 사장님이 너무 말없이 자르시기만 하고 손에 담배 냄새가 많이나 한 번만 방문했다. 여러 이유들로 미용실을 다섯 군데 정도 옮겨 다녔다. 중간중간 지인의 추천을 통해 괜찮은 미용실을 방문했지만 아쉽게도 그 선생님은 다른 직장으로 옮기셨다. 내가 복이 없는 것일까. 이제 곧 정착하는 듯싶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날이 지나며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시야를 넓혔다. 집에서 다소 떨어진 거리로 나가보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글의 주인공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이 속속히 기억난다. 주말이었고, 사람들로 북적이던 미용실이었다. 카운터엔 사람이 없었고, 예약은 했지만 누구에게 말해야 될 줄 모르는 나는, 흔히 식당에서 요청하듯 나의 예약 선생님을 불렀다. 그냥 선생님이란 세 글자 외치면 될 걸 그 당시 내가 외쳤던 말은 '여기 좀 보세요'였다. 내가 뭐라고 수많은 선생님들 중 나를 봐달라고 때를 썼던 것인가. 입으론 내뱉었는데 머리에선 아차! 싶다는 걸 처음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선생님들은 웃음과 당황 그 경계 어딘가의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아직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혼밥 식당, 카페, 잡화점은 괜찮은데 유독 미용실이 긴장되는 이유가 뭘까. 아무튼 부끄러움을 뒤로한 채 선생님은 내게 다가왔다.


여러 선생님들 중 이 선생님을 선택한 이유는 이러하다. 한 곳에 정착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타인의 리뷰를 면밀히 보게 되었다. 머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선생님별 이력에 써놓은 수상 자격증은 내게 영어처럼 다가왔다. 마치 읽을 순 있으나 뜻은 잘 모르겠는 그런 거 말이다. 그렇다. 이해를 못 했다는 뜻이다. 이력은 포기하기로 하고 리뷰에 집중했다. 리뷰 중 막연히 '잘 잘라주세요~'와 같은 상투적인 것 말고 디테일한 후기를 봤다. 따뜻하게 대해주시는지와 리뷰에서 묻어 나오는 진정한 감탄들을 보았다. 나아가 선생님이 달아주시는 답글들도 확인하며 한 선생님을 선택했다. 이 정도면 너무 치밀한 거 아닌가 말할 수도 있겠다.


나의 머리에 관심을 가지기로 했으니 이 정도 관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선생님을 만났다. 첫인상은 너무 온화하셨다. 조곤조곤 말씀하시며 여러 가지 스타일을 제안해주셨다. 다른 미용실과는 다를 바 없는 기본적 인사치레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다. 40분 정도 커트를 하는 시간에 '지금 괜찮으신가요?'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셨다. 다른 사람이 볼 땐 '아 뭘 자꾸 물어 이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섬세함으로 받아들였다. 수십 명의 고객 중 한 고객에게도 허투루 하지 않는 마음씨로 말이다. 바리깡 세기도 묻는다. 아프진 않으신지, 덥진 않으신지. 내가 지금 병원에 와있나 착각할 정도였다. 선생님의 꼼꼼한 모습에 나는 환자가 되어 연신 괜찮다는 말만 했다. 선생님은 섬세함과 차분함 게다가 나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는 유연한 동화 능력을 가지신 분이셨다.


가장 중요한 머리는 어땠을까? 디테일을 잘 알지 못하는 나도 괜찮을 만큼 잘 다듬어 주셨다. 드라이기를 통해 정돈 시간까지 알려주시며 관리법도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껏 받아온 미용실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


내가 느낀 서비스의 방점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결제를 마치고 미용실을 나서려는데, 문을 열어주셨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려는 찰나에 선생님이 먼저 내려가시는 걸 보게 되었다. 미용실은 2층에 있었는데 1.5층 계단까지 동행해주시며 ‘다시 한번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주셨다.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내 미용실 인생, 황송하다 싶은 대우를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계단을 내려와 부족한 점은 없었는지, 나의 오늘 하루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셨다. 선생님의 정성에 화답하고자 자동적으로 나의 고개는 넙죽 숙여지기로 했다. 미용실 안에서의 경험은 밖으로도 이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엄마가 '니 인생 중에 제일 잘 자른 것 같다'며 안 하던 칭찬을 하셨다. 머리를 잘랐을 뿐인데 괜히 어깨가 하늘로 승천하는 기분이었다. 그날의 경험을 여자 친구에게도 전했더니 둘 다 무조건 그곳만 가라고 단언했다. 나는 엉뚱했던 첫 만남을 뒤로한 채 미용실 '철새 살이'를 끝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감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선생님의 태도를 곱씹었다나는 고객에게 옷을 팔았을까, 경험을 팔았을까를 되뇌며 나의 ZARA 근무 시절을 회상했다. 반성과 다짐이 공존한 머릿속의 생각은 어느 정도 가다 멈춘 채 동생에게 전달되었고 나는 선생임을 추천했다. 놀라운 사실은 동생도 현재 그 미용실을 꾸준히 다니고 있다.


선생님은 어느덧 7년째 미용일을 하고 계신다. 이러한 선생님의 손길 하나하나에 나의 머리카락은 춤추는 중이다. 선생님을 만난 지 6개월이 되어간다. 지금에서야 글을 쓰는 이유는 여전히 한결같은 선생님의 모습을 꾹 눌러 담아 묘사하고 싶어서다.


선생님과 부쩍 친해졌다관심사, 가치관, 살아온 여정까지 나눈다. 선생님은 나중에 자신의 가게를 차리는 것이 목표라 하셨다. 나는 그때 꼭 찾아뵙겠다며 나의 진심을 전했다. 이건 오늘 알게 된 사실인데, 나와 선생님은 동갑이다. '머리 자르는데 뭐 그리 말이 많냐' 물을 수 있겠다. 선생님은 스스로 이 행위를 힐링이라 표현하셨다. 말이 잘 통하는 고객을 만나게 되면 되려 자신이 회복된다 하셨다. 고객을 상대하는 일에 번아웃이 오지 않으려면 감정을 컨트롤하고, 억눌렸던 감정을 비워낼 필요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선생님이 내게 그 감정을 비워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이후 매번 정성스러운 리뷰를 남기며 누군가의 발자취를 선생님께 이어주려 노력중이다.



오늘도 나의 머리가 예쁘게 디자인되었다.

선생님의 친절은 내 머리 꼭대기 위에 자리 잡았다.

자리 잡은 친절은 또 한 번 내 몸을 감쌌고, 행복한 기운은 글을 쓰는 나의 하루 마무리 끝에 멈춰 서있다.


나에게 미용실은 선생님과 내가 거울을 마주한 채 나의 머리가 디자인되는 곳이자 서로의 다양한 관점과 따스함이 만나기로 한 약속의 장소다.


나의 냉랭함을 한 스푼의 따스함으로 채워주신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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