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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May 10. 2021

아무도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현실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웹툰 5개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예계에서 학폭 폭로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2018년 시작된 미투 사건을 포함하여 좋은 취지를 가졌는데도 스러지고 사라진 많은 운동이 그랬듯, 학폭 폭로도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기 힘들만큼 가짜 폭로가 겨우 용기를 낸 진실된 폭로를 압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폭로는 진실로 드러났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학교폭력이라고 부를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왕따를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얼마나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지 안다. 그런 나 역시도 학교폭력이 주는 상처의 깊이를 다 안다고 말하긴 어렵다.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깊이를 헤아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들은 학교폭력을 주제로 하거나 일부 차용하는 웹툰이다. 작품에서 그리는 학교폭력을 통해 글을 쓰는 나를 포함, 조금이나마 많은 사람이 피해자가 가지는 공포와 분노, 설움 등의 감정에 다가가기를 바라며 골랐다.


[누군가에게는 지옥일 공간 - <완벽한 교실>]

학교를 다녀본 모든 사람은 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며 몇 년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하루를 함께하기에 사회가 가진 잔인함이 더 밀도 있게 드러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나는 중고등학교 6년간 매우 평탄한 학교생활을 했고, 운 좋게도 학교폭력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조용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어느 학교나 계급이 있고 편애가 있고 무관심이 있다. <완벽한 교실>은 전학생 희조가 학교의 이러한 생리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완벽한 교실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희조는 예쁜 외모와 사교성, 높은 성적으로 전학 오자마자 반에서 소위 ‘주류’에 속하는 학생이 된다. 희조는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적절히 이용한다. 평소 반에서 존재감이 없는 친구와 가깝게 지내면서 친구에게 ‘권력의 맛’을 보게 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말에 복종하게 만드는 식이다. 희조가 반 아이들의 심리를 간파하고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종하는 능력은 섬뜩하기까지 한데, 모든 과정이 판타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가장 섬뜩한 지점이다.


작가: 오구
플랫폼: 코미코


[약자 승리의 판타지가 주는 쾌감 - <약한영웅>]

여학교에 비해 신체 폭력이 빈번한 남학교의 학교폭력 사건을 접할 때마다 생각했다. 왜 꼭 싸움을 해야 하지? 서열 정리를 할 필요성도 못 느낄 뿐만 아니라 서열 정리를 위해 굳이 몸과 마음에 모두 상처를 남기는 싸움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 사고방식과 상관없이 서열 정리는 세계 어느 학교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청소년기 물리적 힘은 타고난 부분이 크고, 권력 판도를 바꿀 만큼 체력을 단련하기에는 학창시절이 너무 짧다. 힘이 약한 학생은 그저 약자로 남을 때가 많다. <약한영웅>은 약자처럼 보이는 주인공 연시은이 일진 세계를 제패한다는 설정으로 독자에게 사이다를 주는 작품이다. 연시은은 가장 친했던 친구와 연관된 사건 이후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다시는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글 같은 학교 생활을 헤쳐 나간다. 학부모 단체에서 플랫폼에 연재중지를 요청한 적이 있을 만큼 폭력성이 다분한 작품이지만, 두뇌와 도구, 심리를 이용해 힘이 절대 권력이었던 기존 서열을 뒤집는 모습은 잠시나마 실제 현실이 주는 답답함을 잊게 한다.


작가: 서패스(글)/김진석(그림)
플랫폼: 네이버웹툰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사건 - <미래의 시간>]

학교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는 폭력 자체에 있다. ‘맞을 만한 짓’은 없으며, 설사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현대사회는 개인이 아닌 시스템 차원에서 응징하는 방식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 학교폭력에 관한 거창한 논의를 떠나서 학교폭력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거슬려서, 꼴 보기 싫어서, 마음에 안 들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뀐 피해자는 자의 또는 타의로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찾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자책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미래의 시간>은 학교폭력의 여파로 과거의 자신을 영영 가둬버린 사람을 그린다. 작품에서 학창시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대학생이 된 주인공이 어느 날 마주하게 된 기이한 상황을 통해 과거의 기억이 어떻게 한 사람의 내면을 망치는지를 강렬한 서스펜스로 풀어낸 작품이다.


작가: 비둘기
플랫폼: 다음웹툰


[외로움과 고통을 견뎌내는 방법 - <신시어리>]

<신시어리>는 ‘친구’라는 관계가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질 때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지 보여준다. 주인공 이혜는 자신이 속한 무리가 괴롭히는 맹다정을 새롭게 괴롭힐 방법을 궁리하다가 스스로 덫에 걸려 한순간에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입장이 바뀐다. 이혜는 다시 예전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참고, 화내고, 애걸하며 애쓰지만 결국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혼자가 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이혜는 한때 자신이 괴롭힌 맹다정과 함께 다니게 된다. 반면 맹다정은 반에서 유일한 피해자로 남지 않기 위해 이혜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친구 사이를 유지하고자 한다. 암묵적으로 맺은 껍데기 뿐인 관계는 졸업 때까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하지만 이혜와 다정은 상대방의 내면을 지켜주는 울타리 역할은 하지 못한다. 작품은 반에서 서열상 약자가 되어버린 두 사람이 외로움과 고통을 감내하는 방식을 그린다. 유일한 약자가 되지 않으려는 자와 폭력의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된 두 사람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지옥이 되는 기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소개하는 작품 중 피해자가 겪는 고통의 깊이가 가장 와 닿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 검둥(글)/박선우(그림)
플랫폼: 코미코


[폭력은 폭력으로, 그리고 또 다른 폭력으로 - <징벌소녀>]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한다면 해피엔딩일까? <징벌소녀>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초월적인 능력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마법소녀들은 많은 사람의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지만 실상은 정부 보호 아래 학교폭력을 자행하는 잔인한 집단이다. 반에서 왕따를 당한 주인공 이금희는 어느 날 동생이 마법소녀 패거리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오히려 정신병자로 몰리고 학교를 떠난다. 복수 계획을 세우고 다시 학교에 돌아온 이금희는 자신이 알게 된 마법소녀의 약점과 과거를 이용하여 한 명 한 명에게 처절하게 복수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복수를 지켜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재생산되는 방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을 보면서 독자는 폭력이 가진 잔혹성을 느끼게 된다. 더불어 작품에서 드러나는 귀여운 소녀 감성 작화와 스릴러풍 채색의 조합은 잔혹성을 한층 더 극대화한다.


작가: 가재(글)/stego(그림)
플랫폼: 레진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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