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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May 11. 2021

박노덕 작가가 그리는 사랑의 세계

<너의 사랑에 대하여> <동정의 형태>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많은 로맨스 작품이 있지만 사랑에 빠지는 애달프고, 설레고, 막무가내이고, 신나고, 행복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품은 많지 않다. 요즘 로맨스 트렌드는 과정의 깊이보다 빠른 전개 속 알콩달콩한 티키타카가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작품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세대의 연애 특징을 반영하고 있어 공감을 얻기 쉽고, 가볍게 읽을 웹툰을 찾는 독자 입장에서 감정소모가 적기 때문에 덜 지치고 쉽게 소비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인물의 감정과 서사에 진득하게 빠져들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너의 사랑에 대하여>와 <동정의 형태>를 추천한다. 박노덕 작가가 그리는 세계는 촘촘한 감정선으로 직조한 사랑의 서사로 가득하다.


<너의 사랑에 대하여>(왼)와 <동정의 형태>(오)


두 작품은 같은 등장인물로 구성된 시리즈물이다. 다만 작품이 가진 분위기와 다루는 커플, 시간대는 다르다. 1편에 해당하는 <너의 사랑에 대하여>는 학교가 배경인 청춘물이다. 주인공 정요한은 어릴 적 나이 터울이 있는 친형이 짝사랑에 실패한 모습을 본 이후 짝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부질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요한은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 박무경이 같은 동아리 후배를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박무경의 사랑이 친형이 겪은 짝사랑처럼 비극적 결말을 맞지 않게 하기 위해 큐피드 역할을 자처한다. 하지만 요한은 큐피드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에 눈 뜨고 점차 스며든다.

<동정의 형태>는 전작에서 2-3년 후 이야기이며 정요한의 친구 권유리가 주인공이다. 유리는 오랜 기간 짝사랑한 누나의 결혼식에서 울고 있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 이선우를 만난다. 유리는 선우가 당연히 누나 때문에 운다고 생각했지만 선우가 짝사랑한 상대는 다름 아닌 매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나의 행복을 빌어주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분노가 가득한 유리는 선우가 가진 비밀을 약점 삼아 자신과 똑같이 짝사랑의 고통을 겪는 선우에게 끈질기게 화풀이한다.



[풋풋하고 아릿한 청춘의 사랑 - <너의 사랑에 대하여>]

요한은 감정에 솔직한 캐릭터. 당황하고 들이대고 우는 순간도 순수한 솔직함이 돋보인다.


<너의 사랑에 대하여>는 청춘물 특유의 풋풋함이 가득하다. 풋풋한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인물은 주인공 정요한이다. 정요한은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불도저 같은 성격에 대형견처럼 여기저기 치대고 들이받는 귀여운 캐릭터이다. 짝사랑은 물론이고 사랑에도 담을 쌓고 사는 정요한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박무경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될지는 눈에 선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다가 결국 인정하고 난 후에는 고성능을 뛰어넘은 과도 성능 불도저가 되어 돌진한다. 정요한을 볼 때면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순수하게 대처한 때를 회상하게 된다.


항상 혼자 추스르는 데 익숙한 박무경. 소극적이지만 배려가 몸에 밴 캐릭터이다.


반면 박무경은 일찍이 자기 성 정체성을 깨닫고 동성애를 향한 시선 역시 인지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짝사랑을 해도 상대에게 고백할 생각조차 안 하고, 상처받아도 항상 혼자 추스르는 데 익숙한 박무경은 계속해서 솔직한 감정을 끄집어내려는 정요한이 당황스럽고 불편하지만 마음 속에서 정요한의 존재감은 점점 커진다.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사람 덕분에 박무경은 좀 더 진솔하게 자기 감정을 인정하게 된다. 저돌적인 정요한과 달리 박무경은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순간이 많은데 그럼에도 작가가 세밀하게 엮은 감정선 덕분에 답답하다기보다 묵묵히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서투르지만 사려 깊은 짝사랑의 사랑 - <동정의 형태>]

짝사랑하는 상대 앞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는 두 사람


<동정의 형태>는 전작과 달리 훨씬 분위기가 무겁다. 작품 전반에 생기라고는 찾기 힘들고 거의 매 회차마다 울거나 화내는 장면이 있다. 두 주인공 모두 짝사랑을 하는 중이지만 권유리는 서투른 자기자신에 분노하고 이선우는 마음도 전하지 못한 채 먼 발치에 서서 계속 울기만 한다. 어떻게든 껍질을 깨고 나아가려고 한 정요한-박무경과 달리 두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명확히 안다. 두 사람이 짝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행동하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성격만큼이나 위로하는 방법도 극과 극이다.


둘의 관계는 대부분 권유리가 이선우의 아픈 부분을 쑤시고 후벼 파면서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반복된다. 댓글창에도 많은 독자가 ‘유리야 제발 그만해ㅠㅠㅠㅠ’를 외치는데 유리의 방식이 항상 선우에게 상처만 주지는 않는다. 선우는 슬픔에 잠기다 못해 먹혀 들어가는데, 유리의 거친 행동은 침잠하는 선우를 끌어올리곤 한다. 선우는 유리의 언행에 계속 상처를 받으면서도 거친 모습 안에 숨은 서투르고 아이 같은 모습에 유리를 계속 보듬어준다. <동정의 형태>는 전작과 달리 아직 연재 중인 작품인데, 각자 뚜렷한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추후 어떻게 변화할지가 관전 포인트이다.     





또 다시 봄이 왔다.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라고 시니컬하게 대응하는 노래도 있지만 역시나 봄을 주제로 하는 노래는 대부분 사랑 노래다. 대학교 새내기는 낭만 가득한 연애를 꿈꾸고 사회생활에 찌든 회사원조차 오랜만에 데이팅 어플을 켜거나 주변에 소개팅 해달라고 얘기할 만큼 사랑이 싹트는 계절, 봄. 간질간질하고 설레는 기분에 맞춰 해피하기만 한 로맨스 웹툰으로 기분을 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깊게 파고드는 작품으로 사랑을 순수하게 마주해보면 어떨까.

그럴 때 박노덕 작가의 세계로 들어오기를 추천한다. 현실에 발 붙이고 있지만 맹목적인 사랑 때문에 오히려 비현실처럼 보이는 세계. 박노덕 작가의 작품은 결국 서로 다른 외로움을 가진 주인공들이 상대에게 손을 내밀고 맞잡는 이야기이다. 비록 서사가 진행 중인 유리와 선우는 아직 슬픔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너의 사랑에 대하여>를 모두 읽고 <동정의 형태>에 다다른 독자가 찌통을 견뎌내고 사랑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도록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을 엔딩을 기다린다.



작품명: <너의 사랑에 대하여> / <동정의 형태>
작가: 박노덕
플랫폼: 코미코 / 리디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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