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피플> <수희0(tngmlek0)>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디에나 인플루언서가 넘쳐나고 누구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이전에는 ‘공인’이라는 말이 더 자주 쓰였다. ‘공인’의 원래 뜻은 세금을 받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만, 대체로 정치인, 기업가, 스포츠 선수, 연예인처럼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포괄하는 말로 쓴다. 인플루언서의 등장으로 공인의 경계는 더욱 불분명해졌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인플루언서’는 공인과 달리 반드시 대중매체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될 수 있다. 어린 초등학생이 올린 먹방이 유튜브에서 1천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브랜드에서 SNS 인플루언서와 콜라보한 제품이 오픈 하루 만에 매진되기도 한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핸드폰 하나로 도전 가능하다는 점에서 얼핏 진입 장벽이 낮아 보이지만 인플루언서가 되는 길은 쉽지 않고 감내해야 할 부분도 많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화려한 면이 강조되기에 가늠하기 힘든 인플루언서의 삶 이면을 다룬 두 작품, <팔이피플>과 <수희0(tngmlek0)>(이하 <수희0>)이다.
[포장된 욕망이 부딪히는 공간 - <팔이피플>]
전작 <마스크걸>과 <위대한 방옥숙>에서 각각 외모지상주의와 지역 이기주의를 다룬 매미 작가와 희세 작가가 신작 <팔이피플>로 돌아왔다. 꾸준히 블랙코미디를 다룬 두 작가가 신작에서 다루는 소재는 ‘SNS’다.
SNS에서 육아용품을 팔며 정상급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주인공 박주연은 지지부진한 자기 계정과 달리 70만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고교 동창 김예희를 동경하는 동시에 질투한다. 박주연은 김예희를 저격하는 부계정을 운영하지만, 김예희가 유명 인플루언서 모임인 ‘진분홍회’ 일원임을 알고 모입에 가입하고자 김예희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인플루언서로서 화려한 삶을 원하는 평범한 주부 박주연과 이미 화려한 삶을 사는 셀럽 김예희. 완전히 다른 삶처럼 보이지만 <팔이피플>은 결국 두 사람이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김예희는 SNS에서 완벽한 몸매를 자랑하지만
무리한 다이어트 때문에 항상 거식증에 시달리고 고등학생 때 낳은 딸을 숨기며 싱글인 척 이미지메이킹을 한다. 박주연은 딸 아이 사진을 올리며 항상 다른 사람 얼굴처럼 보정하고 판매하는 제품 관련 항의가 들어오면
DM을 삭제하는 등 브랜드에 해가 될 만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박주연은 김예희를 동경하면서 가까이 지내는 동네 아기엄마들이 자신보다 급이 낮다고 생각하고, 김예희는 진분홍회 모임에 참가한 재벌 자제와 동급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박주연을 자신보다 한 급 아래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재벌집 딸 눈에는 김예희도 박주연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는 동일한 급으로 묶인다.
끊임없는 욕망과 비교 속에서 위로, 더 위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두 사람. 골인 지점이 없는 레이스인 줄 모른 채 달려가는 두 사람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전개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익명 뒤에 숨은 존재가 주는 공포 - <수희0(tngmlek0)>]
많은 연예인이 악플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지만 사실 비연예인 입장에서 동일한 고통을 체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대다수 비연예인은 살아가면서 익명 뒤에 숨은 다수에게 노골적이고 악질적인 언사를 들을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수희0>은 익명 뒤에 숨은 존재가 주는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주인공 수희는 불우하고 가난한 집안 환경 속에서 집안일과 가장 노릇을 도맡아 하는 24살 여성이다. 수희는 우연히 남동생이 하는 인터넷 방송에 얼굴을 비췄다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게 된다. 수희는 예쁜 외모로 초반에 많은 시청자를 끌어 모으지만 시청자가 많아질수록 방송을 지적하고 악플을 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채널 운영을 고민하게 된다. 방송을 이끄는 방법을 몰라 갈팡질팡하는 수희에게 한 MCN 회사가 도와주겠다며 접근하고, 소속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도와주면서 수희도 조금씩 유명세를 타게 된다.
얼핏 잘 풀린 스트리머 성장기 같아도, 작품이 다루는 주된 내용은 인터넷 방송을 하는 과정에서 수희가 접하는 폭력이다. 남동생은 잘 나가는 누나를 질투하지만 동시에 누나의 인맥과 유명세를 이용하고 싶어한다. 남자친구는 수희가 잘 되길 바라지만 동시에 너무 유명해질까봐 노심초사한다. 일부 시청자는 수희가 언제까지나 시청자 말에 순종하는 예쁘고 불쌍한 흙수저로 남기를 바라고, MCN 관계자는 수희에게는 지독한 현실인 가난을 키 이미지로 활용하고자 한다.
수희는 자신을 둘러싼 서로 다른 욕망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방송을 원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가볍게 시작한 인터넷 방송에서 마주하는 온갖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작품이다.
갈수록 영향력이 커져가는 인플루언서의 삶을 다뤄서일까. <팔이피플>과 <수희0>은 아직 20화도 채 연재하지 않은 작품이지만 런칭 초기부터 순위가 빠르게 상승하여 네이버웹툰 요일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팔이피플>과 <수희0>은 두 작품 모두 온라인 상에서 보이는 모습과 주인공이 사는 실제 삶 사이 괴리를 다루지만 표현 방식이 다르다.
<팔이피플>은 ‘욕망’과 ‘화려함’이라는 키워드에 맞게 네온 사인 같은 화려한 색채를 사용한다. 네온 색감은 블링블링한 셀럽의 삶을 강조하는 동시에 어딘가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느낌을 준다. 반면 <수희0>은 수희가 맞닥뜨린 새로운 세상이 주는 ‘폭력’과 ‘공포’, 수희가 겪는 ‘가난’을 모두 돋보이게 하는 칙칙한 색감을 사용한다. 매번 긴장감을 조성하는 스릴러풍 전개도 색감과 잘 맞아떨어져 긴장감을 더욱 증폭한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가진 화려함에는 쉽게 눈이 가지만 화려함을 유지하기 위해 겪는 고충은 어쩐지 화려함 만큼 와 닿지 않는다. <팔이피플>과 <수희0>은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겪는 고충과 공포, 괴리와 같은 어두운 면에 독자가 이입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오늘 소개한 비슷한 듯 다른 두 작품을 감상한다면 모든 보이는 삶에는 이면이 있음을 체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