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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May 07. 2021

일상에서 건져 올린 다양한 삶의 의미

웹툰 <낢이사는이야기>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웹툰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여러 작품을 이야기하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웹툰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낢이사는이야기>를 꼽는다. <낢이사는이야기>는 네이버에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8년 동안 연재됐다. 플랫폼에서 연재하기 전부터 세어보면 연재 기간은 무려 10년이 넘는다. 생활툰은 장르 특성상 작가 자신이 작품에 투영되기 때문에 작품에서 발생한 논란이 곧 작가 본인의 도덕성으로 재단되기 쉽고, 일상에서 소재를 발굴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한 편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작품을 10년간 연재한 저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오랜 팬의 입장에서 사심 가득하게 작품의 매력을 꼽아보았다.



발전이 보이는 작품

한 번 스타 반열에 오른 연예인은 쉽게 인기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계속 노력해야 현상 유지라도 가능한 것이 이치다. 노력하지 않으면 내 실력이 퇴화하거나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해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다.

작가가 개인 홈페이지에서 연재한 2004년부터 시즌 2 초반인 2010년까지의 작화 변천사


<낢이사는이야기>는 시즌 1에서 시즌 4까지 캐릭터도, 작화도, 작품 톤도 변화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시즌 1에서는 일상 속 찰나를 단편적으로 그린 에피소드가 많았다. 각 회차의 톤이 일정치 않아 신문에서 매주 연재되는 단편만화를 보는 느낌이다. 시즌 2로 넘어가면서 작품 톤이 일정해지고 낢 캐릭터의 외양도 자리잡았다. 시즌 3를 기점으로 작가의 내면을 다루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며 독자와의 거리를 좁혔다. 평소 고민이나 가치관을 공유하고 웹툰 작가로서 가진 고충을 풀어내기도 했다. 시즌 4는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주제에 맞는 여러 소주제를 두고, 소주제에 맞는 에피소드로 구성하여 연재했다.


시즌 1 로고(좌)와 시즌 4 로고(우)


시즌을 거듭할수록 조금씩 변화를 시도한 작가의 노력은 결국 작품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각 시즌마다 고유한 매력이 있지만, 특히 시즌 4는 내용이 정돈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에피소드 형식이지만 마치 서사가 있는 웹툰을 보듯 기승전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가 내면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과 속도에서 독자와의 거리를 매우 건강하게 좁혀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활툰은 작가의 생활이 일부 드러난다는 이유로 작가의 사생활을 무례하게 침범하는 독자가 많은 장르다. 작가는 댓글에 해명하거나 화내기보다, 매 시즌마다 사생활과 작품 사이의 균형을 조절하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 과정을 독자와 공유하며 대응해왔다. 작가의 노력에 발맞춰 독자 역시 작품과 생활 사이 경계를 넘지 않고 사생활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 많다.



귀여움과 공감에 엽기 한 방울

귀여움은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낢 캐릭터는 귀엽다(고 생각한다). 펜선이 가늘면 가는 대로 아기자기하게 귀엽고, 펜선이 굵으면 굵은 대로 커다랗고 둥글둥글하니 귀엽다. 하지만 낢 캐릭터의 진정한 매력은 펜선 굵기가 아니라 작가 특유의 엽기적인 느낌이다. 

운동 후 알배김이나 면을 흡입하는 모습, 더위를 말 그대로 먹어버린 모습은 공감 가능한 상황과 엽기적인 터치가 더해져 낢 캐릭터가 가진 귀여움을 끌어올린다. <낢이사는이야기>는 이모티콘이 없던 시절에 이미 작품 속에서 이모티콘과 짤을 대량 생산한 것이다. 낢 이모티콘과 굿즈가 잘 팔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감을 바탕으로 한 재미

사람마다 일상 콘텐츠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에 대한 호기심이나 대리만족일 수도 있고, 나와 비슷한 일상을 보며 느끼는 공감의 정서일 수도 있다.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고, 발을 크게 찧고, 당연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마냥 크게 공감하는 모습. 많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이다.


<낢이사는이야기>에는 공감을 유도하는 에피소드가 많다. 알람을 재빠르게 꺼버리고 다시 잠에 드는 모습이나 탁자에 발가락을 찧는 순간과 같이 시즌 1~2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한다. 귀여운 캐릭터로 가득한 에피소드를 보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 일상 속 동일한 순간에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내 일상도 귀엽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된 기분이 든다. 

특히 엄마 캐릭터는 우리 엄마와 성격상 다른 부분이 많은데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많아 엄마에게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특히 피아노를 가르치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우리는 왜 꼭 피아노를 배울까? 자식을 키우는 과정이 모두 유사한 걸까? 아니면 우리네 어머니들이 유독 유사한 양육방식을 택한 걸까? 이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엄마와 딸 사이에 한 번은 있을 법한 공감 에피소드들



매력덩어리 서브 캐릭터: 엄마, 이과장, 쫑

감초 같은 서브 캐릭터는 <낢이사는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서브 캐릭터는 실제 인물이 가진 특징이 부각되면서 더욱 캐릭터가 확실해지는데,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서브 캐릭터는 엄마, 이과장, 친구 쫑이다.

풍성한 머리 덕분에 일명 ‘브로콜리 여사’로 불리는 엄마 캐릭터는 시즌 3까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브로콜리 여사의 대표적인 특징은 건망증과 잔소리, 아지매 개그로, 이 특징에서 비롯된 다양한 귀요미 에피소드를 보유하고 있다.

브로콜리 여사님의 건망증, 잔소리, 아지매 개그가 돋보이는 컷들

이과장은 작가의 남자친구이자 남편으로, 시즌 3부터 시즌 4까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인스턴트와 군것질, 배달음식을 좋아하고 올빼미형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낢과 반대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새벽 수영과 자전거 출근을 하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이다. 부부 간의 서로 다른 모습이 부각되는 부분과 서로 맞추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알콩달콩하면서도 리얼한 부부생활을 보여준다.

때로는 친구같고 때로는 연인같은 이과장과 달콤하지만은 않은 귀여운 부부생활


쫑은 낢의 친구로, 낢이 잠시 쫑이 다니는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했을 때 등장한다. 낢과 매우 좋은 케미를 보여주면서도 낢과는 다르게 시니컬하고 세상 다 산 듯한 말투가 매력적이다. 낢 캐릭터가 가진 어벙하고 아이 같은 모습과 대비되면서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니컬한 모습이 매력적인 캐릭터, 낢의 친구 쫑


내면과 외부를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

작가가 일상에서 길어 올린 공감 요소는 <낢이사는이야기>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시즌 3에 접어들면서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한 고민을 본인의 시각을 통해 풀어놓는다. 에피소드에 드러나는 작가의 시선은 굉장히 신중하면서도 따뜻해서 나의 일상과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시즌 4 <꼼꼼한 자> 에피소드 中


예를 들어 나는 시즌 4 <꼼꼼한 자> 에피소드를 접한 후 타인을 묘사할 때 더욱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면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나 역시 실제로 다른 사람을 설명할 때 굉장히 쉽게 정의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 이후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즌 4 에피소드 <과장님 돌보기>와 <아내의 역할>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이전에는 감흥이 없던 에피소드가 인상 깊게 다가오기도 한다.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는 삼십 대 여자로서 미래의 잠재적 선택지인 결혼은 막막하기만 한데, 작가가 나보다 앞서 비슷한 고민을 한 모습을 보며 내가 마주한 혼란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닫기도 하고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한다. 특히 시즌 4에서 작가는 결혼을 하고 작가의 아버지는 은퇴를, 작가의 언니는 출산을 하는 등 작가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 작가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압박이나 출산 및 육아 가치관, 달라진 일상을 수용하는 법 등을 생각한다. 일상 속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그리던 작가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될 지점을 이야기하는 단계에 다다른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일상 속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가치관을 독자와 공유하는 단계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나는 이 작품이 일상툰의 진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시즌 4를 끝으로 작가가 휴식기에 들어간 지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작가는 2018년에 4회차짜리 브랜디드 웹툰을 연재했고, 매년 굿즈와 이모티콘을 제작하고 있으며, SNS에 이따금 이과장과 함께한 에피소드를 업로드한다. 하지만 <낢이사는이야기> 복귀 소식은 아직이다.

작품을 애정하는 독자로서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SNS에 만화가 올라올 때마다 ‘작가님 <낢이사는이야기> 연재는 언제 하시나요ㅠㅡㅠ’ 같은 댓글을 달고 싶지만 이미 나 같은 독자가 한둘이 아니기에 부담을 느끼고 복귀가 더 지연될까봐 간신히 참고 있다.

아마 작가님은 시즌 4 다음 단계를 위한 발전을 고민하고 계신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네 시즌에 걸쳐 거듭 변화를 시도했듯, 작가님은 아직 시즌 5에서 시도할 변화를 찾지 못한 것 같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상의 많은 부분을 꺼내 보여주었기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며 일상을 차곡차곡 쌓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낢이사는이야기>를 기다리는 일이 설렌다. 작가님이 작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낢이사는이야기>는 낢이 죽기 전까지 계속될’ 테니까.



작품명: <낢이사는이야기>
작가: 서나래
플랫폼: 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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