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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May 07. 2021

창작자도 사람입니다

웹툰 <그림을 그리는 일>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직업은 웹툰 PD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신인 작가를 발굴하거나 기성 작가와 의견을 조율하는 사람.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작가가 투고하는 공간이 있어서 나를 비롯한 다른 PD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새로 들어온 투고원고를 검토한다. 갓 입사했을 당시에는 일이 많이 없기도 해서 투고원고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다. 작가가 올린 이력서부터 시놉시스, 캐릭터 시트, 완성 원고와 콘티 원고까지,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었다. 사수는 나를 보며 ‘바빠지면 하나하나 다 보기 힘들다’, ‘나는 이제 캐릭터 시트만 보고 별로다 싶으면 원고는 보지도 않는다’고 했고, 본부장님은 ‘작가 이력이 얼마나 화려하든지 간에 작품이 별로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점점 일이 많아지고 사수가 한 말처럼 정말 투고원고를 살펴볼 짬도 나지 않는 날도 늘어났다. 시간이 나는 날이면 캐릭터 시트만 살펴보거나 그마저 보지 않고 잠시 콧바람을 쐬러 갔다. 뒤늦게 연극에 빠져 대학원 극작과에 진학한 친구는 나의 변화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언니, 그거 다 봐줘. 나도 극본 투고하는데, 그거 그 사람 딴에는 정말 열심히 한 거야.”


<그림을 그리는 일> 2화 '작가라는 호칭' 中


웹툰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림을 사랑하지만 그림 때문에 불행한 성민의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일이 곧 일상에서 숨통을 트는 창구인 성민은 자신이 그토록 염원한 ‘그림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하지만 어쩐지 행복하지가 않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낙서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청소년기에는 가계에 부담이 될까 두려워 미술의 꿈을 포기했지만 꿈은 접히지 않은 채 성민의 안에 자리했고, 대학교 입학 후 교내 만화 동아리를 만나면서 다시 밖으로 나온다. 멘토와 다름없는 선배를 만나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 성민은 행복으로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행복은 곧 자신이 ‘그림을 그리며 먹고 살 것’이라는 유래 없는 확신으로 바뀌면서 미대로 전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성민은 어느새 좋아한다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대학 졸업 후 그림책 삽화 작업을 하며 그림으로 먹고 사는 꿈을 이루지만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 성민은 거듭되는 평가와 자기불신으로 그림 그리는 일에서 느낀 행복마저 잃어간다.

<그림을 그리는 일> 4화 '하고싶은 것' 中

웹툰 PD이지만 아직 작가를 만나본 적 없는 신입 웹툰 PD인 나에게 작가는 미지의 대상이다. 그도 그럴 게 선배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유형의 작가가 있다. 처음부터 대놓고 불신을 드러내며 회사에서 제시하는 모든 조건을 의심하는 유형, 미세한 수정 작업을 30번 넘게 거듭해 기한을 간신히 맞추는 유형, PD의 칭찬 없이는 도저히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 작업 진도가 전혀 안 나가는 유형, 만장일치로 작품이 탈락했지만 강력히 연재를 주장하는 유형…… 작가 개인이 회사를 상대해야 하니 의심할 수 있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정 작업은 작가의 자유이다. 이해 가능한 유형이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PD를 공황장애로 몰아넣는 어마무시한 작가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안에는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창작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확실히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좀 다른가?’


<그림을 그리는 일> 6화 '재능과 노력의 속도' 中


<그림을 그리는 일>은 창작자 역시 非창작자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성민의 고민이나 일과는 일반 취준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나은 사람은 널렸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매 순간 집중하며 죽을 듯이 노력하다가도 딴짓으로 하루를 허비하는 날도 적지 않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평가에 주눅들어 자기 확신을 잃어가지만 그럼에도 내 진가를 알아볼 사람이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일> 3화 '그림으로 가는 길' 中


非창작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창작자와 창작물은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창작물은 곧 창작자 자신이다. 창작은 자기 내면 또는 자신이 관찰한 무언가를 자기 시선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기술이 뛰어나면 작업 의뢰는 계속 들어오겠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대체로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오리지널리티가 뚜렷한 사람에게 붙는 법이다. 기술자가 아닌 창작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보고 고유한 시선과 정체성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필연적으로 창작자 본인에 대한 평가와 맞닿아 있고, 평가를 온전히 수용하고 감당하는 일 역시 창작자 개인의 몫이다. 어느 정도는 회사의 보호를 받는 직장인과 다른 지점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 8화 '그림과 나' 中


창작자에게 늘 따라붙는 꼬리표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창작자가 일에서 마주하는 고민이나 질 낮은 업무 환경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자주 평가절하된다. 최근에는 ‘마감노동자’라는 말이 생기면서 창작자 역시 ‘근로자’라는 인식이 생겼지만, 여전히 창작자 대부분은 어떤 지원 없이 혼자 수면 아래에서 발을 움직이는 백조와 같다. 창작자도 생계를 해결해야 하며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주눅이 드는 똑같은 인간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서 성민이 ‘적어도 나만은 행복했어야 했다’고 독백할 때 마음이 너무 아팠던 이유는, 버티는 일에 에너지를 쏟다 보니 그림이 주는 행복을 잃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직장인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퇴사를 결정하듯, 창작자 역시 창작 행위가 주는 행복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면 그만두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창작을 향한 고정관념은 창작자가 괴로운 순간에도 ‘좋아하는 일을 포기한다’는 결심을 어렵게 한다. 다행히 성민의 주변에는 그 사실을 일깨워주는 재훈과 같은 좋은 친구들이 존재했고 성민은 창작 행위에서 자신이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일을 완전히 그만두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일> 6화 '재능과 노력의 속도' 中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게 연극을 공부하는 친구가 한 말과 유사한 충격을 준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창작자에 대한 편견이 결국 창작자를 두려운 존재로 만드는 유일한 장애물이며, 창작자가 가진 예민함을 이해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창작자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 일에 애정과 자부심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정말 일하기 싫은 순간도 있다. 생계가 결부되어 있기에 내 작품이지만 어떤 부분에서 타협해야 하는 쓴맛을 보기도 하고, 내 이름으로 나온 작품이 성공을 거두는 단맛을 보기도 한다. 창작에 소질이 있어 창작자가 됐지만 딱히 애정이 생기지 않아 기계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될 수도, 좋아서 시작했지만 능력과 운이 따라주지 않거나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해 그만둘 수도 있다. 


뒤늦게 슈가맨으로 이름을 알린 가수 양준일 씨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예를 들어 누가 치킨집을 열었다가 문 닫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음반 내고 망할 수 있는 권리 있지 않나요?”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유독 창작자의 흥망에 쉽게 말을 보탠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나도 창작자에 편견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창작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이 창작자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이제는 투고원고를 볼 때 작품의 완성도에서 창작자의 능력을 가늠하기보다 정성과 노력을 가늠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느낀 처절함을 상기하며, 창작자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고 응원을 보내는 PD가 되고 싶다.




작품명: <그림을 그리는 일>
작가: 초록뱀
플랫폼: 만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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