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에서 중고 거래를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평소라면 거의 만날 일이 없는,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외국인도.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장바구니 카트를 당근마켓에 내놨다. 꽤 비싼 값을 주고 좋은 제품을 구매했지만 집에 오르막이 심해서 카트를 끌고 장을 본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결국 장바구니는 창고에 들어가서 먼지를 맞으며 잠들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것이 아까워 가끔 차를 타고 큰 마트에 갈 때 들고 가서 짐을 싣고 오기도 했다.
그마저도 캠핑을 위해 산 캠핑용 카트를 들이게 되면서 더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캠핑용 카트에 물건을 담아오는 게 더 물건도 많이 들어가고 끌기도 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바구니 카트는 창고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장은 자주 보니까. 비싸게 주고 샀는데 버리긴 아깝잖아.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다.
이번에 짐을 정리하면서 장바구니 카트를 보내기로 했다. 당근마켓을 하게 되면서 ‘쓰지 않는 물건은 좋은 주인에게 보내기’가 내 신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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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카트를 당근마켓에 올린 지 몇 분 안 돼서 채팅이 왔다.
-나는 관심이 있다.
채팅창을 보는 순간 나는 몇 번 커뮤니티에서 보았던 당근마켓 사례가 떠올랐다. 어색한 문장을 보내오는 외국인과 거래한 경우였다. 프로당근러가 되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싶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매하실 건지 질문했다.
-정가인가요?
예상치 못했던 상대의 질문. 정가라니. 벌써부터 나의 해석능력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가격 이야기인거 같았다. 8천원에 팔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것을 살 것이다. 우리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오늘이나 주말에 가능하다고, 시간은 아무 때나 괜찮다고 답변을 보냈다.
-오늘 오후 5시 어때?
갑작스러운 반말. 이후에도 몇 번 외국인 구매자는 존댓말과 반말을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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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나는 외국인과 그날 오후 5시 집앞에 있는 던킨도너츠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초행길이 낯설었는지 외국인은 10분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장바구니 카트를 구매한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외국인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키가 훤칠한 인도인 남자였다.
내가 카트를 끌고 가자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캔 유 스피킹 잉글리쉬?”
오마이 갓. 나는 영어울렁증이 심한 사람이다. 취직을 위해 2년 동안 토익 공부를 해서 그나마 리스닝만 가능한 정도다. 해외여행을 가면 듣기는 하지만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답답함에 웬만하면 해외로 나가지도 않는 사람이다.
나는 어버버하며 한국말로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영어로 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머릿속이 하얘져서 한국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오케이, 오케이하면서 만 원짜리를 건넸다. 두 번째 시련이 다가왔다. 나는 팔천원에 내놨는데 만원 짜리라니.
주로 당근 거래를 하면 구매자가 금액을 맞추어 현금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아니면 계좌이체로 거래를 했다.
나는 만원을 받고 당신의 계좌로 2천원을 넣어주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의 영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작문 난이도였다.
번역 어플을 사용해야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갑자기 닥친 상황에 경황이 없고 어떤 어플을 써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결국 던킨도너츠를 가리키며, 잔돈을 바꿔오겠다고, 그것도 한국말로 말했다.
“너 정말 도넛 사는 걸 원해? 아니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내가 저기 가서 잔돈으로 바꿔올게.”
이건 영어였지만, 나는 알아들었다. 나는 리스닝은 그래도 꽤 괜찮았다. 그가 가리킨 곳은 신문을 파는 가판대였는데 할머니들이 썩 잔돈을 바꿔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마저도, 나는 상대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한국인의 고질병인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나는 손사래를 치며 도넛을 사오겠다고 했고, 먹고 싶지도 않은 도넛을 하나 사서 잔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도인 남자에게 2천 원을 거슬러 주었다.
“바이 바이.”
내가 한 유일한 영어 인사였다. 그는 “씨 유.”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볼일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인사는 흔히 하는 말일 것이다. 그 말이 어쩐지 따듯하게 느껴졌다. 또 보지 않아도 또 봐요 라고 말하는 그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집에 와서 계획에 없던 도너츠를 먹으며 장바구니 카트로 장을 볼 인도인 남자를 생각했다.
중고거래를 하는데도 영어실력이 필요하다니. 영어만 제대로 할 줄 알았어도 나는 도넛값을 지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고거래를 하다보면 깨닫게 된다.
중고거래는 단순히 물건만 주고 받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 놓이게 된다는 걸.